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oha Oct 05. 2022

부부가 함께 코로나에 걸리면

이른 아침, 여자는 옷을 갈아입던 남편의 외마디 비명에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지난 2년 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이제 코로나가 종식될 기미가 보인다는 이때 남편은 흐릿한 두 줄이 새겨진 진단키트를 여자 앞에 내밀었다.

“줄이 이렇게 희미한 걸 보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지? 너무 걱정 마.”

병원에서 돌아온 남편은 이제 일주일 동안 집에 있게 됐다며,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도 얼른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주말에 마트 가려고 했지. 지금 집에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데….”

여자는 병원보다 하루 세끼 챙겨줘야 할 남편의 밥이 더 걱정이었다. 서로를 단짝 친구라고 말하는 부부는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같이 먹고, 같이 있었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마저 당연히 나눠 가졌을 것이다. 병원에 서둘러 달려가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아침을 차려주고 남편이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 병원에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대충 아침상을 차려서 약을 먹게 했지만, 여자는 뭔가 막막하고 초조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 전 형님네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시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음식을 날라줬다는 이야기를 남편이 한 적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셨다고? 다들 고생하셨겠다. 근데 시켜 먹으면 되지 않아?”

증상이 남편보다 이틀 정도 늦게 온 여자는 혼자서 열심히 국을 끓이며 반찬을 만들고, 필요한 식재료를 배달시켰다. 그러는 동안 증상이 점점 심해진 남편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굴을 하고 안방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목이 아파서인지 말도 거의 하지 못하고, 기침한 해대는 남편을 위해 배를 삶기도 하고, 과일도 배달시키며 혼자 안달복달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코로나가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여자는 혼자서 자꾸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원래 8시였던 아침 시간은 약기운이 떨어져서 이른 새벽부터 뒤척이는 남편을 위해 좀 당기고, 점심은 1시, 저녁은 7시로 정해서 먹었다. 아무리 아파도 간단한 국정도 못 끓일까 했지만, 여자에게도 본격적인 증상이 시작되자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여자는 부모님 대신 ‘쿠팡’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갈비탕 같은 탕 종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제 밥 준비는 부부가 각자 약봉지를 하나씩 들고, 식사 시간에 맞춰 일어나 냉동실에 얼려둔 밥 하나를 꺼내 반씩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갈비탕을 부어주면 끝이었다. 입맛을 완전히 잃은 남편은 밥 반 공기조차 먹기 힘들어했다.

분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남편은 거실, 여자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소리 말고는 집안이 조용했다. 일주일 동안 날씨마저 흐려서 집안까지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목이 너무 아파 침을 삼킬 때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잘 때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해서 베개 위로 침이 줄줄 흘렀다. 여자는 남편이 옆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코를 하도 풀었더니 귀가 멍멍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귀도 잘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뼈마디가 하나하나 다 아파서 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남편이 초기에 좀 괜찮냐며 한 시간마다 물어보는 여자를 앞에 두고도 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여자를 진정시킬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니, 나아지고 있는지 더 심해지고 있는지 본인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더니 온 몸이 뜨겁다 못해 눈알까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픈 와중에도 몸은 귀신같이 약효가 떨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너무 아파서 약도 아무 효과가 없다고 했더니, 약효가 떨어지고 나니깐 역시 약이 최고구나 싶어.”

여자의 말에 약봉지를 꼭 쥐고 있던 남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문득 여자는 자신들이 지금 노부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지금 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버리면 이런 모습이 될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귀가 멍멍해져서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간단한 이야기도 할라치면 몇 번이나 되묻다가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말할 기운마저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기침을 하는 데 남은 기력을 다 써버리고 나면 끼니를 거를 수 없어 대충 국에 밥 한 그릇을 국에 말아먹고 마는 것이다. 코도 풀다가 지쳐 그냥 놔둬버리자 음식 냄새도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적막하기만 한 집안 분위기도 왠지 마음이 쓰였다. 기침소리와 코를 푸는 소리 만이 서로의 생존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전화벨이나 메시지 수신음  한 번 울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아프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는 상황이 왠지 여자의 미래인 것 같아 조금 서글퍼진 것이다. ‘아이도 없는 우리의 미래 말이야….’ 

그래도 여자는 매끼마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간단히 해야 했다. 그것은 무엇이든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는 그들의 살림살이를 생각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은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여자는 자신이 그런 것에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깨달았다. 어릴 때, 아파서 누워 있으면 그저 아픈 것에 대한 괴로움만 느끼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아무리 아파도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것도 내팽개칠 수 없었다. 게다가 일주인간의 코로나 휴가는 ‘무급’이지 않은가! 

여자와 남편은 전투적으로 병을 이겨내야 했다. 다행히 통증이 아주 심할 때를 제외하고 언제나 남편은 여자 옆에 서 있었다. 일주일 동안 심심할 테니 넷플릭스라도 보자며, 남편은 병원에서 오자마자 결제를 했지만 두 사람의 일주일은 무척이나 바빴던 것이다.

*

“우리 아프지 말자. 우리는 꼭 건강하게 살아야 해.”

일주일을 보내고 출근을 한 남편은 여전히 기침을 하고 코를 풀면서 그렇게 말했다. 남편과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회복하고 있던 여자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하지. 그 유명한 코로나, 우리도 한 번 걸려봤네!”

서로를 의지 할 수밖에 없는 부부였다. 그것은 조금 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엄청난 의무감이기도 했다. 서로를 두고 혼자 아파서도 안되고, 한쪽으로 모든 부담을 몰아서도 안 된다는. 어떻게든 서로를 위해서 삶의 무게 다는 저울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여자는 문득 자신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긴 것만 같았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기 위함 인지도 몰랐다. 




#코로나 #코로나확진 #코로나자가격리

#부부가_함께_코로나확진 #부부가함께_코로나자가격리

#코로나증상 #결혼 #결혼의이유

이전 03화 결혼하지 않는 것은 초라한 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