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시어머니의 생신 식사자리를 앞두고 시부모님을 모시러 오라는 형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 시댁에 머물고 있는 누나를 데리러 매형이 가지 않았냐는 남편의 질문에 ‘자리가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시댁과 여자의 집 중간쯤에 위치한 식당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던 부부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디쯤이냐?’는 전화를 두 번째 받았을 때, 여자는 북적이는 빵집 안에서 겨우겨우 케이크를 받아 들고 있었다. 시댁에는 거의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사위는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처가에 방문한 사위에게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어머니의 투철한 사명감이 곧 외식을 한다는 사실마저도 잊게 만든 것일까.
쉽사리 잡힐 리 없는, 토끼처럼 온 집안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연년생 남매에게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는 것도 형님과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묵묵히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있던 사위에게 시아버지는 외식 메뉴로 뭐가 좋은 지 물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손자, 손녀의 손을 하나씩 나눠 잡으시고 흐뭇한 얼굴이 되어 집 밖을 나섰다. 며느리는 출석 체크만 하고 나면 금세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날씨마저 화창한 가을날의 늦은 오후였다.
*
“낙지볶음이 좀 매운데 괜찮으실까요? 해물파전에도 고추가 들어갑니다.”
“박서방은 매운 거 좋아하잖아. 괜찮아요."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과 사위를 번갈아 바라보던 시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엄마, 애들도 있잖아. 하나는 맵게 해 주시고, 다른 하나는 안 맵게 해 주세요. 해물 파전도요 “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한산한 식당 안에서 음식은 빠르게 날라져 왔다.
“매운 건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아, 여기, 여기 앞으로 주세요.”
시어머니는 사위 앞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급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곧이어 나온 안 맵게 만들었다는 음식 역시 다급한 시아버지의 손짓이 가리키는 아이들 앞에 놓였다.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여자 앞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사위와 며느리가 테이블 양쪽 끝에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 앞에 놓여 있는 음식만으로도 입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밑반찬마저 몰려있는 그곳은 시부모님과 사위, 손자가 마주 앉아 있는 테이블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제 갓 시집 온 새색시도 아닐뿐더러, 번번이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서 하소연을 하던 여자에게 언니는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이다.
“신경 쓰지도 말고, 눈치도 보지 말고 그냥 먹어. 음식이 멀리 있을 수도 있으니깐 긴 젓가락을 준비해 가는 거야. 그걸 딱 꺼내서 음식을 집어 먹으면 다들 얼마나 재밌어하시겠니?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직원 불러서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먹어. 도시락이라도 싸가서 꺼내 먹던지. 섭섭해할 거 뭐 있어? 너도 너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되는 거지.”
“나 참. ‘우리 며느리가 드디어 미쳤구나.’ 하시겠네. 그냥 조금만 배려해 주시면 즐거운 식사 자리가 될 텐데 말이야. 왜 내가 미친년이 되어야 그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거냐고?”
“그렇게 할 자신 없으면, 그냥 신경 쓰지 마. 자리만 지키고 있다가 일어난다고 생각해.”
여자가 생각하기에 따로 음식을 시켜 먹는 것보다, 긴 젓가락을 준비하는 것보다 그저 몇 시간만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이미 힘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연습은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했으니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어설프게 가족이 되려고 하니깐 더 섭섭하고 속상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해와 변화보다 ‘체념’이 방법이 된 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하지만 여자에게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시댁으로 돌아온 후 소파에 앉아 있던 사위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자는 선수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주말을 친정에서 보낼 형님과 아이들은 위해서 차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남편에게 집까지 태워다 달라고 했다. 아파트만 나서면 택시며 버스가 깔린 동네였는데 굳이 남편에게 태워 달라고 하는 사위가 여자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결혼 전 -결혼 후에도 그랬는지 모른다.- 세 명의 누나와 매형들, 그리고 조카들의 운전기사 노릇을 해온 남편의 역할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도 아니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길을 굳이... 여자의 머릿속이 ‘굳이?’라는 단어로 가득 채워지고 있을 찰나, 형님이 일어섰다. 아들 내외가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못마땅해하시는 시부모님의 의중을 눈치챈 것이다.
둘만 남겨진 조카는 남편에게 매달렸다. 시댁에 올 때면 언제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남편 덕분에 형님과 시부모님은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넓지 않은 시댁에서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여전히 싱크대 앞을 서성이던 여자의 눈에 아이들과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남편이 들어왔다. 그 순간 여자는 자신의 존재가 아닌 시댁에서의 남편의 존재마저 의심스러웠다. 그 조카들은 아무도 자신을 외숙모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여자가 아는 체를 해도 언제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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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신기한 건 말이야, 사위는 정작 아이들 양육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거야.”
남편은 또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긴장된 얼굴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시댁에 갈 때마다 느낀 건데, 어머님, 아버님이 다 해주시니까 말이야. 게다가 형님이 힘드셔서 거의 시댁에 계시니까 남편이 해야 할 부분을 부모님께서 다 해주시는 거지. 차례로 세 형님들 양육하는 거 다 도와주시고, 반찬이며 뭐든 다 챙겨 주시잖아.”
“그런데?”
“그런데 시댁에 조그만 일이 있어도 불려 가는 건 당신이잖아. 설마 형님이 간단한 거 하나도 처리 못해 주시겠어. 매일 시댁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사위가 얌체처럼 보인 단 말이야. 그런데 또 어머님, 아버님은 사위들이라면 그저 못 챙겨주셔서 안달이시지.”
여자의 눈에 시부모님은 야무지게도 시집을 잘 간 형님들은 위해서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딸들의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보상하려는 것처럼. 그 노력들이 힘에 부칠 때도 있으실 텐데... 딸들의 삶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 시부모님을 뵐 때마다 손갈 데 없이 순하기만한 아들, 즉 남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던 것이다.
“여보는 그저 시댁 심부름 꾼 같고. 정작 부모님께 도움을 드려야 할 때 얌체 같은 사위들이 ‘아들’이 다 알아서 해라 그러면 어떡할 거야. 부모님 도움으로 힘든 고비 다 넘겨 놓고 말이야. 아들 입장에서 당연히 할 도리라고 해도 좀 섭섭하지 않겠어?”
“뭐가 섭섭해. 누나들이 힘들면 도와줄 수 있는 거지. 나는 내가 할 일 하는 거고.”
어쩌면 그것은, 시부모님과 형님네 부부들 그리고 남편까지, 열명 중 제일 끄트머리에 서 있는 여자가, 아니 아이들보다도 더 서열이 낮아 시댁 문지방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는 여자가 걱정할 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근데 먹고사는 게 팍팍하잖아. 우리는. 형편이 넉넉한 형님네들하고 다르지. 게다가 많이 가르치고 장가갈 때 집까지 해주신 사위들의 부모님들이 나중에 ‘자식 도리’ 찾지 않으실까?’ 결국 여자가 떠올린 건 고만고만한 나이차의 형님네 가족들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자신들의 경제적 형편이었다. 정작 남편은 태연하게 여자를 향해 웃고 있었다. 여자만 또 생각이 많고, 예민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시댁에 오면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게다가 여자는 한 전도 제대로 앉아 본 적이 없는 그 소파에, 방에서 잠만 자다가 돌아가도 시어머니는 언제나 사위들의 좋아하는 반찬을 제일 먼저 준비하셨다. 외식을 해도 메뉴 결정권은 사위들에게 있었다. 그것은 곧 딸들의 결정이기도 했고, 시댁은 언제나 그렇게 돌아갔다. 며느리는 종종거리며 시어머니 뒤를 쫒아다니고, 식탁에서 누가 일어나기만 해도 벌떡벌떡 같이 일어나고, 아무리 싱크대 앞을 서성거려도 아무 관심이 없는데…. 시댁에서 며느리와 사위가 존재하는 공간은 하늘만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꼭 한 순간 시부모님의 시선이 여자에게 쏟아질 때가 있었다. 바로 남편이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하고 일어날 때였다. 그 순간은 더 있다가 가라거나, 자고 내일 가라는 이야기를 꺼내시며 여자를 향해 서운함과 원망이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며느리는 마치 시댁의 배경처럼 어딘가에 향상 존재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함부로 사라져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여자는 그 순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 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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