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여자는 문득 자맥질을 연습하는 새끼오리에게 시선이 멈춰졌다. 앙증맞은 몸과 귀여운 얼굴이 무색할 만큼 자신을 내던지 듯 차가운 물속에 풍덩 뛰어 들고는 한 참이나 떠오르지 않았다. 한겨울 차가운 물속에 끊임없이 자신을 담가야 하는 운명. 여자는 저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추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새끼오리의 운명 때문이었을까. 자신은 과연 어떤 세상에 온몸을 담가야 하는 것일까?
여자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촉수 다발을 뻗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자극을 감지하듯이 여자의 신경은 언제나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은 주파수의 영역이 넓은, 그래서 매일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도 듣고 사는 기분이 들었다.
들리지 않는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보이지 않는 위협에 겁을 먹어야 했다. 나는 가끔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응?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아. 왜 ‘정보의 홍수 시대’ 뭐, 이런 말 있잖아. 너무 식상한 그 표현이 나에게는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매일매일 홍수처럼 많은 자극들이 쏟아지니까 나까지 거기에 떠밀려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자는 그 시작점이 자신의 인생 어디쯤에 있는지 몰랐다. 어릴 때 말이야... 몇 살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릴 때였어. 텔레비전을 틀면 예쁜 아이들이 나오는 아동복 광고가 있었거든. 아직도 그 광고에 나오던 노래가 생각나네. 여자는 저도 모르게 그 노랫말을 흥얼거리다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 그 광고가 나오면 텔레비전 앞을 떠나 텅 빈 골목을 서성거린 어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때 겁을 잔뜩 먹었던 것 같아... 그 광고를 나오는 아이들이 너무 멋져서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미워 할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그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와 버렸어. 아무 쓸모도 없고 미운 아이를 내다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실제로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아니,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없었던 것 같아. 그 텔레비전 광고랑 그 때 내 마음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부모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분명히 기억 날 텐데 말이야. 나는 그 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두려워 할 정도로...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나도 잘 모르지만... 여자는 문득 하루 종일 한 번도 울리지 않고 잠잠하기만 자신의 휴대전화에 눈길이 멈췄다. 그러니까... 전화 말이야.... 전화?
여자는 얼굴로 쏟아지는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멈춰 섰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 빚쟁이들 전화가 끊이지 않았거든. 내가 전화 수화기를 들어 귀에다가 대면 아버지가 얼른 눈짓을 했어. 여자는 눈을 감았다. 여자의 귀에 전화기 넘어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었다. 아빠 바꿔봐라. 아빠 집에 안 계시는데요. 내 등 뒤에 바짝 붙어있던 아버지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알겠다, 하는 목소리와 함께 딸깍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리면 여자는 휴... 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 어디 갔니, 언제쯤 오시니... 라며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거나, 옆에 있는 거 다 안다는 말이라도 들리면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새 옆에 와 앉아 있는 아버지의 성난 눈과 전화기 넘어 낯모르는 아저씨의 성난 목소리에 어린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여자의 엄마 역시 말 한마디라도 잘 못 하는 날에는, 손에 쥔 수화기 뒤로 ‘와장창’ 살림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엄마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전화를 받아야 했거든.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기위로 뻗은 내손이 덜덜 떨리는 게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지금도 전화 벨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떨려. 그래서 언제나 내 전화기는 무음이야.
그건 눈치가 없으면 겪어야 하는 당연한 결과같은 것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약게 행동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언제나 불호령을 내리셨어. 고작 국민학교도 들어갈까 말까한 어린애한테 말이야. 근데 사실 나는 좀 어리바리한 아이였거든. 자라는 동안에도 내내 순한 아이였으니깐 우리 아버지한테 만만하게 화풀이 할 수 있는 딸이기도 했지만, 볼 때마다 속 터지는 딸이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 눈치 빠르고 약은 아이가 되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사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던 것 같아. 웃긴 게 뭔 줄 알아? 아버지가 했던 말 중에 나를 두렵게 했던 말이 ‘니 애미나 너나 똑같다’는 거였어. 엄마는 항상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살 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그때 나는 뭐가 뭔지 잘 몰랐어. 그저 아버지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어. 항상 나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그 흔한 반항심조차 없을 만큼.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때뿐만 아니라 여자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관찰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사람들을 살피고 있어. 뭘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듣고 있는 거야. 거기에 당연히 나는 없어. 왜 그러는 건데? 눈치 없이 굴었다가는 다 박살나는 거잖아. 여자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 전화기 앞에 앉아 있는 거야. 여자에게 예민함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걸 ‘공기의 흐름을 읽는다’고 표현해. 여자는 언제나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입으로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머무는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나는 가끔 그 단어가 가지는 뜻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언제나 그 뒤에 숨은 뜻은 뭘까 하고 생각하지. 내 생각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 사람의 숨은 의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러면 힘들지 않아?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 내 머리는 원래 그런 거 마냥 그렇게 휘리릭 돌아가는 거야.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하려면 어쩔 수 없어. 왜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데? 음... 그래야 나를 받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니면 그래야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뭐 그런...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쫓겨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지. 나도 사실 거기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야.
그 방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의 도덕적 판단도,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실질적인 판단도 여자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깐... 그럼 뭐가 문제야? 문제? 문제는... 이제는 너무 힘들어. 억울한 생각도 들고. 왜 나에게 그런 걸 바라는 걸까. 아무도 네가 그러길 바란 사람이 없다면 어때? 정말 그럴까. 아니면 나는 그 누구보다 살아남기를 원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금은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영영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야. 내 세상에는 내가 없어.
여자는 사실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착한 딸이 되고 싶었고, 착한 동생, 착한 이웃, 착한 동료가 되고 싶었다. 외국어만큼이나 막연하기만 그들의 눈짓, 그들의 숨소리를 해석해 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쓰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것이 여자에게는 무척 중요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 그런 거 아니야? 이 세상에서 버려지고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버린다고?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여자는 자신의 입을 통해 술술술 흘러나오는 나오는 말들의 뜻을 제 스스로도 얼른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입은 계속 움직였고, 여자는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듯이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들은 나를 진짜 받아준 것이 아니라는 생각. 나는 자꾸만 애를 쓰는데 그들은 나를 봐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어.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이의 존재는 오히려 잊혀지는 걸까. 아무도 내 아픔에는 관심이 없어. 내 말도 들어 주지 않고... 여기까지 말하자 여자는 자신이 마치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말하고 보니 좀 유치하다...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던 일들이 사실은 여자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실 이 모든 감정을 깨닫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난 이후의 일이야. 어린 날 나를 두렵게 했던 그 감정들이 선명하게 다시 내 앞에 놓여진 기분이 들었어. 뭐랄까?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한 기분이 라고 할까. 결혼 후 시댁의 냉담한 반응에 여자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틀에 갇혀서 맘껏 따져 볼 수도 없었어. 내가 뭘 잘 못 한 거냐고 말이야. 그냥 뛰쳐나와 버릴 수도 없고. 여자는 그저 무력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을 때 여자의 어린 날의 자신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또 텅 빈 골목길을 헤매야 할지도 몰라...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다고 생각하니 되레 자신의 모습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모습도.
사랑이 흔해빠진 인생을 산 사람은 모를 거야. 그 두렵고 막막한 감정을 말이야. 세상의 모든 불이 다 꺼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생각 했을 때 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어.
새끼 오리는 자신이 고꾸라지던 그 자리에서 한 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새끼오리가 지나간 자리는 수면에 엷은 주름이 잡히듯 잔잔한 물결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너는 아직……. 그 옛날, 거기에 갇혀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 텅 빈 골목길에, 또는 요란하게 울리던 전화기 앞에 말이야. 너는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거야...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면서 네 인생을 그들의 말 한마디에 걸어놓고 살고 있는 거야. 냉담한 눈빛 한 번에 세상이 무너질 듯 겁먹으면서... 그렇다면 네 아버지의 말처럼 너는 멍청한 등신 인거야.
이제 네 세상은 네가 받치고 서 있는 거란 걸 너는 아직도 모르다니.... 다 내려놔버려. 더 이상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발버둥 치지 말란 말이야. 그냥 묵묵히 살아가면 되는 거야. 그냥 네 인생을 살아가라고... 내가 하나도 없는 내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거센 외침만큼 날카로운 바람이 여자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 위 앙상한 빈 가지를 흔들며 윙 하는 소리를 내던 바람이 다시 여자를 흔들고 있었다. 누구와도 함께 있지 못할 때 비로소 여자는 자기 자신과 함께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