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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석 Sep 13. 2022

'미'에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 '미'가 되는

22년 9월 13일

비행기를 타고 수 번을 반복하여 상공을 오르내리지만 조그맣고 이리저리 긁힌 자국이 있는 비행기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달 동안의 제주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언제나처럼 창가 자리에 앉아 다시 보는 한국의 지상은 처음처럼 재밌다.


건축의 분야에 들어서면서 꽤 많이 받았던 질문 두 개는 [건축이 무엇인가], [한국의 미는 무엇인가]이다. 두 질문 다 건축학과에 입학해서부터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은퇴할 때(혹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받지 않을까. 그만큼 중요한 질문이고, 질문받는 사람을 괴롭히기 좋은 질문이다. 나는 경력이 아직 없는 만큼 그다지 괴롭힘 받지는 않았지만 뇌에는 이미 딱지 비슷한 것이 생겼는지, 길을 걷다가 혹은 건물을 살펴보다가 혹은 책을 보다가 두 질문이 생각나거나, 두 질문에 대한 답(물론 주관적인 의미)의 실마리가 언뜻언뜻 보일 때가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길을 걸으며 보는 광경 혹은 건물을 지으면서 보는 광경과 전혀 다르다. 길을 걸으며 건물을 보면 옥상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너머의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과 대로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의 모양새도 물줄기의 모양새도 보이지 않는다. 건물을 짓는 사람(설계자 혹은 시공자)은 그것보다는 조금 큰 시야로 건물을 본다. 건물을 짓기 전 지도에서 길이나 건물들의 짜임새를 볼 수 있다. 좀 더 노력을 들여 짓는 건물이라면 지하철역이나 공원, 사람들의 동선이나 옆 건물과 동네와의 관계까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을 직접 쌓아 올리는 사람은 길을 걷는 사람보다 더 자세한 시야를 가진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외장재와 구조체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 시멘트가 어떻게 섞이는지, 벽면을 향한 엘리베이터의 바깥면은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비행기에서의 시야는 조금 더 원초적이다. 그것은 그림을 보는 시야와 비슷하다. 산등성이와 물줄기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그림. 시골 마을의 느슨한 지붕들과 일자로 나열된 비닐하우스들이 평평하고 비옥한 곳에 자리 잡은 그림. 도시의 공원과 지붕들, 골목길과 대로들이 만들어내는 그림. 나는 그렇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몽골, 러시아, 핀란드, 중동, 포르투갈, 프랑스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한국의 그림들을 본다.


넓은 시야로 보면 사소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 생긴 거대한 새우 동상이나 잔뜩 녹슨 건물 마감재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뽑은 '한국의 정경을 망치는 요인'중의 하나인 옥상의 녹색 방수 페인트는 심지어 조금 귀여워 보일 때도 있다. 이번 제주에서 서울로 오면서는 어쩐지 보이는 모든 것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 형태

아무렇게 생긴 산, 어떤 것은 삐죽삐죽하게 어떤 것은 둥글둥글하게

산 사이로 뱀처럼 구불거리는 굵고 가는 물줄기

평지를 따라 낸 길, 물줄기 옆으로 난 도로, 숲의 경사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도로

몇 개씩, 혹은 몇십 개씩 묶음 지어 나열한 비닐하우스

가장 평평한 곳을 논과 밭에게 넘겨주고 산자락과 구릉에 자리 잡은 집들

산과 경사를 함께하는 골프장 (환경적으로는 그다지 조화롭지 않지만)


- 색

파랗고 붉은 양철 지붕, 옥상의 녹색 방수페인트

채석을 위해 숲의 중간중간을 파내 드러낸 갈색


22.9.3 김포행 비행기에서



리스본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가 리스본의 남쪽을 중심으로 크게 반시계의 원을 그렸다. 그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자연의 형태가 이전에 있고, 그 위에 맞추어 놓인 논밭과 건물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 파리나 바르셀로나의 철저히 계획된 도형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점과 점을 이은 선들이 모여 곡선을 만든다. 면과 면이 모여 곡면을 만든다.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각각이지만 그 사이를 산과 바다의 흐름이 연결한다. 이윽고 시골을 지나 도시의 모습이 비행기 아래로 펼쳐진다.


- 형태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의 군체처럼 남쪽을 향한 아파트들의 군체

아파트들이 없는 곳을 메운 초록색 옥상과 빨간색 지붕

그 사이 어느 정도의 질서를 만드는 축구장, 잔디밭

건물들의 옥상이 만드는 집합은 산의 오르내림을 짐작하게 한다

길고 넓게 뻗은 강, 그리고 철도

도시의 운동장과 공원은 건물들이 만들어낸 풍경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너무 정돈된 그 모습은 오히려 건물들의 풍경에 일조한다

산세를 따르지 않는 도로의 비중이 많다.

작은 건물과 골프장들도 마찬가지로 산세를 굳이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태초에 산만이 존재하였지만 건물들의 홍수가 덮친 풍경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은 한강뿐


- 색

아파트의 비중이 과도하여 색이 다채롭지 못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은 한강뿐


도심을 벗어난 곳의 아름다움은 산에서 기인한다. 그곳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의 정체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은 산에서 흘러나온다. 그 이유는 그림에 칠해진 대부분의 물감이 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이 가진 미는 마테호른이 가진 그것과도 다르고, 후지산이 가진 그것과도 다르다. 이름이 없는 산이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물론 산마다 이름이 있지만, 하나의 산으로는 우리나라의 지형이, 산이 가진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제주의 오름들이 아름다운 것과 비슷한 이유다. 눈의 높이에서 보면 제주의 오름과 육지의 산들은  규모에서  차이가 있지만 비행기의 높이에서는 둘은 그렇게  차이가 없다. 가진 것은  분포와 익명의 산세가 만들어내는 골격, 그리고  위를 사뿐히 덮은 인공물의 마무리가 만드는 채도가 옅은 아름다움이다.


도심으로 들어설수록 인공물의 비중은 늘어난다. 그에 따라 그림의 채도와 대비는 짙어진다. 초록색과 붉은색이 많아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녹색의 공원과 운동장 또한 자유롭지 못한 배치에서 오히려 채도를 짙게 한다. 큰 강이 조금이나마 밀도를 낮추어주지만 그곳에서 다시 문제는 발생한다. 산의 중심과 강은 대부분 비어있음으로 밀도를 조절하지만 그것이 그림의 채도와 대비를 효율적으로 낮추어주기 위해서는 완충이 필요하다. 산의 중심과 강에서부터 가까울수록 인공물의 밀도가 낮고, 멀어질수록 짙어지는 그라데이션이 있어야만 조화로운 강약이 생겨난다. 하지만 빽빽하게 지었음에도 부족한(과연?) 건물들은 산을 점점 덮어가고, 강변에는 가장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강과 산이 고립된다면 그 모습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진다.


도심이 잘못되었고 그 외가 아름답다는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심은 아름답지 못하고 파리와 바르셀로나는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번 비행에서처럼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눈이 조금 더 많아져도 좋을 것 같다는 바람으로 쓰는 글이다.


22.9.3 김포행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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