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 D-750 렌즈에 담은 일기
추석입니다. 복은 많이 받으셨는지요
저는 추석 근처만 되면 몸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외조부모님과 함께 살 때 얻었던 흉들이
다시금 스멀스멀 아려온다고 해야할까요
발에 밟히던 유리조각, 구급차에 실려가던 모습들,
끔찍한 고성,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았던 침묵의 밤
그래도 단 하나 다행인 건
저는 여전히 잘 살아있다는 겁니다.
저를 좋아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고, 이겨낼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고.
그리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돌연 나를 감당할 수 없다고 떠났습니다.
맥락없는 작별인사에도 크게 상처받지 않았던 건
그간 나를 지나쳐간 무수한 사람들도
다 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지요.
"이렇게 견뎌오다니 대단해.
하지만 그런 네 상처를 내가 품어줄 수 없을 것 같아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이 사람은 한달만에 이런 말을 꺼내놓고
멀리 사라졌습니다.
그이의 친절과 미소 사이로, 사랑에 빠지지 않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원망하지 않았기에 담담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차분히 홀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이번 추석을 새는 것도 혼자이지만
그래도 귀여운 강아지들과 앉아
이야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맛있는 집밥을 차려 먹으며 잘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나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
나는 이런 나를 감당해달라고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그저 내가 홀로서기할 때까지 멀리서 기다릴 수 있으면
그 이후에 남은 것들을 생각하자고만 했었는데
하늘은 이번에도 저에게
사람을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생살로 상처를 끌어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조금 멀리서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내 삶에도 나를 사랑해줄 유니콘 같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삶 속 수많은 은사님들께서 해주셨던 말들을 떠올리며
저는 이제껏 그랬듯이
천천히 하루를 살아내고 견뎌내고 버텨내면
언젠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2년 전 일에 잠도 자지 않고 일에 몰두하다
염증이 온 몸에 번져 간과 골반뼈로 옮아
배에 복수가 차고, 폐에도 물이 차서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숨 한번 들이쉬기 어렵고
하루에 열번 넘게 구토하며
항생제와 진통제 없이 버티기 힘들었던 때
나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와
보호자가 되어 이 주간 보호자 침대에서 쪼그려자며 간호해주었던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이제야 보답할 시간을 내어봤습니다.
스튜디오와 식당을 예약하고
제 카메라로 그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내 삶이 여유롭지 않더라도
이렇게 보답할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요.
이 소중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봤습니다.
그 친구, 그리고 나.
그래서 괜찮습니다.
이번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