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일찍 가게에 나온 주이는 채에 곱게 거른 밀가루를 얇디얇은 육전용 소고기에 살짝 묻혔다. 후추와 소금과 다진 마늘로 간을 한 계란물에 밀가루 묻힌 소고기를 풍덩 담근 후 꺼내 달궈진 팬에 올렸다. 지글지글 소리가 나면서 육전은 금세 익었다. 주이의 몸은 신속하게 육전을 만드는 사이클을 기가 막히게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네 장의 소고기를 밀가루에 묻혀 둔다. 한 장씩 계란물에 담갔다 팬 위에 올리는 작업을 네 번 반복하면 뒤집는 타이밍이 찾아오고, 다 뒤집은 뒤 네 장의 소고기를 밀가루에 묻혀두면 다 익은 육전을 꺼낸다. 전 8장을 부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간을 보려고 갓 익은 따끈한 육전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뜨끈한 계란과 고소한 마늘향과 부드러운 소고기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구멍이 송송 뚫려 힘줄이 완벽히 해체된 소고기는 며칠 전 집에서 해 먹었던 육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식감이 좋았다. 하나 더 욕심내 두 번 접어 입에 털어 넣고 보니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버무린 칼칼한 파채가 생각났다. 오늘 저녁 현수를 만나러 갈 때는 파채도 부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왜 육전 만들 생각을 이제야 했지?’
주이는 따끈한 육전 맛에 취해 혼자 피식 웃었다. 이거야 말로 외국엔 없는 우리나라 음식이 아닌가! 주이는 혼자 육전으로 성공해 프랜차이즈로 성공하는 상상을 잠깐 하다가 너른 마음으로 손님들에게 시식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육전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소고기를 계란에 부쳐 먹을 수 있다니,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들이 맛을 본 뒤 음식의 이름을 궁금해했다. 주이는 처음에 장난기가 발동해 ‘6 jeon’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하다가 외국인들은 분명 ‘Sixjeon’이라고 발음할 테니 ‘Beef-Jeon’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육전 1장 가격은 $6로 책정됐다. 호주에서는 소고기와 계란이 싸지 않은가! 만드는 수고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육전의 ‘육’이라는 글자가 숫자 6을 발음하는 소리와 같았기 때문에 $6에 팔기로 했다.
육전을 팔기 시작하면서 주이의 손은 더 바빠졌다. 아무리 재빨리 육전 부치는 사이클을 알고 있다 해도, 여러 장 사가는 손님이 늘다 보니 장사가 끝나면 시드니 전집은 아수라장이 됐다. 여기저기 달걀 껍데기가 떨어져 있고, 채에 받치다 만 밀가루를 흘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드니 전집의 일매출은 3주 만에 50% 이상 늘었다. 가격은 김치전 보다 저렴했지만 한 개만 먹는 손님보다 두 개 이상 사 먹는 손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은 조리 시간이 다른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짧았다. 신메뉴로 발탁된 육전은 예상치 못한 성공보증수표가 됐다.
육전을 판매한 지 1주일쯤 지나 현수의 제안대로 파채 샐러드를 판매했다. 포장손님에게 파채를 담아낼 용기 주문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바로 먹는 손님에게는 서비스로 파채를 조금씩 나눠줬다. 맵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운 표정을 짓는 손님도 있었다. 파채는 양념에 절인 뒤 시간이 지나면 식감이 떨어지므로 요청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양념만 얹어 $1에 판매했다. 한국식 매운맛에 열광하는 패디스마켓 헨리는 쌍따봉을 외치며 파채를 서너 개씩 사 먹었고, 리사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1위 자리를 파채와 곁들인 육전에게 내놓겠다고 선포했다. 육전을 두 번 접어 한 입에 털어 넣고는, 10개씩 포장해 가는 손님도 있었다. 육전이 쉽고 빠르게 시드니전집 매출을 점령하면서 시드니 전집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육전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성가신 일도 그만큼 늘어났고 주이의 손목과 어깨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팬 위에는 지저분한 계란 부스러기가 속출했다. 주이는 매일 밀가루를 채에 곱게 거르고, 계란이 뭉치지 않게 잘 풀고, 키친 타올로 팬을 청소해야 했으며 그 사이 손님의 주문(특히 영어로)을 받고 다 먹은 누군가의 결재까지 빠른 속도로 처리했다. 그건 마치 몸에서 필요에 맞게 각기 다른 도구가 튀어나오는 가제트 형사만이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손님이 많아질 때 주이는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 같았다. 여기 불 끄면 저기서 불나고... 효율적으로 전을 부쳐야 했지만 마음이 다급하니 손이 고생했다. 허드렛일만 없어도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을 부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육전을 사기 위해 몰려든 손님으로 하염없이 늘어선 긴 줄을 바라보다 손을 덴 주이는 결심을 내렸다.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해.’
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뽑았다가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모시고 일한다는 사장의 이야기를 주위에서 종종 들었다. 그녀는 사업이 처음인 만큼 누군가를 고용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아르바이트생 채용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주위에 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회사원 아니면 교사, 공무원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주이의 뇌리를 스친 한 사람이 있었다. 한인 정육점 사장 현수. 현수의 가게에 갈 때마다 뒤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을 본 기억이 났다. 장사를 마친 주이는 서둘러 정육점으로 향했다.
“사장님. 혹시 아르바이트생 구하는 팁 같은 거 있을까요?”
“아르바이트라... 일손이 필요할 만큼 전집이 잘 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하하... 저야 뭐, 지금 있는 친구가 들어오기 전까지 사람 뽑느라 고생 좀 했죠...”
주이는 주소를 맞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가 지금의 아르바이트생을 선발하기까지 국적도 재주도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정육점을 거쳐갔다고 했다.
“아무래도 정육점에서 일하려면 건장한 청년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손님한테 고기만 썰어서 내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엔 '성실하고 건장한 청년이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구인광고에 냈더니 죄다 자기가 성실하고 건장하다고 찾아오더라고요. 거기선 옥석을 가리기 힘들었죠.”
“그랬겠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이래선 사람 못 구하겠다 싶어서, 구인광고를 올릴 때 여기서 할 일을 세세하게 올렸어요. 고기 포장, 배달, 정육 손질, 야간작업 뭐 이런 힘든 일까지 다 올리고 대신 보수는 두둑하게 주겠다고 했어요. 그제야 제대로 된 녀석들이 지원하더라고요.”
현수에게 아르바이트생 선발 꿀팁을 전수받은 주이는 제대로 된 일꾼을 구하기 위해 <호주세상> 홈페이지 구인 게시판에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쓴 구인광고를 올렸다.
패디스마켓 옆 시드니전집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 구함
주요 업무: 주문응대, 계산, 포장 및 재료준비(계란 풀기, 밀가루 털기 등),
매대 정리 정돈, 근거리 배달, 장보기 등
※ 전은 안 부쳐도 됨. 시급 $24(인센티브 있음), 면접은 오후 3시 방문 요망
3일 동안 게시글 조회수는 300회가 넘었지만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시드니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누구라도 계란이나 풀고 밀가루나 채에 거르려고 시드니까지 온 건 아니라 생각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베이커리나 카페를 선호한다고 들었다. 지원자가 있어야 면접이라도 보면서 옥석을 가릴 텐데, 주이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계란부스러기를 키친타월로 닦아내면서 구인광고를 수정해 볼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아르바이트생 뽑는 시드니 전집이 여기가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