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표적인 단어가 아닌가? 우리는 노래에서도 사랑에서도 빨리 빨리를 외친다.
그런데 표지에서 말한다. ‘빨리 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이다. 한때 나의 좌우명은 표지와 일맥상통했다. ‘뽈레 뽈레(천천히, 겸손하게)’ 흔히 말하는 라임이 딱 맞지 않는가?
‘뽈레 뽈레’는 케냐와 탄자니아어이다. 킬리만자로에서 가이드와 함께 등반자들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들이 주로 쓰는 언어라고 한다. 포터는 경사가 70도쯤인 바위틈을 1인당 약 20kg쯤 지고 이동한다. 숨이 넘어갈 만큼 힘든 상황이지만 일당 10달러를 받기 위해 벌이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한다. 1만 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나여도 그 일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뽈레 뽈레’를 외치며 천천히 킬리만자로를 오르내린다. 보통의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이면 버킷리스트를 이뤘다고 하니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걸까? 하지만 그만큼 챙겨야 할 짐들도 많기 때문에 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그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빨리’만을 외치면 혼란만 더 가중되지 않을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우리나라의 말처럼 마음이 조급 해질 땐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근데 참 머리로는 아는데 현실에서 적용하는 건 어떤 사자성어든 쉽지 않은 것이 또 현실인 것 같다.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마음이 작아지면 떨려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왜 못하는데?”라고 묻지 마세요
우리는 모르는 게 많아요
말 못 하는 마음도 많고요
솔직하게 내 마음의 크기를 잰다면 간장 종지가 딱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책에서 ‘비교하지 마세요, 그러면 마음이 작아지고 떨린다’라고 한다는 것에 매우 공감이 됐다. 안 그러려고 해도 비교하는 마음은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했다. ‘부럽다’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은 ‘괴롭다’로 너무나도 쉽게 넘어갔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나도 충분히 아니 그 이상 노력했는데 나는 왜 안될까? 저 친구만 허락되고 나는 허락되지 않은 건 지은 죄가 많아서인가?
근데 어디에서 봤다. 사람에게 지어지는 짊어짐, 즉 십자가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말이다. 그 총량은 행운이나 복에도 적용된다 했다. 즉, 그 친구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게 있다는 말이다.
가끔은 하늘이 ‘누구에게나 태어난 이유, 즉 쓸모가 있다’라는 말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토록 쓸모없이 느껴지냔 말이다. 하물며 푸바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뉴스에 나고, 이동하는 차가 중계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나는 왜 존재 자체로 사랑받지 못하는 거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답을 준다. 내가 그럼에도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베풀었던 호의와 사랑이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래서 힘들고 아픈 순간, 남들은 다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순간에 오히려 진짜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제는 모르는 게 많은 마음, 말 못 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더 살펴주고 싶다. “왜 못해?”라고 채근하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채근하기 전에 나는 얼마큼 하고 있는가, 내 몫을 해내고 있는가를 다시 점검해야겠다.
그리고 너무 아픈 말들은 제발 좀 삼키고 살아야겠다. 나를 아껴주는 그 모든 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어쩌면 모두에게 상처주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