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눈동자|이슬아>
이슬아 작가는 말했다. 헤어지고 나서야 진정한 만남이 시작된다고. 나에게 이번 서울 여행은 오랫동안 나를 가둬두었던 ‘방구석’이라는 안전지대, 그리고 내면 깊숙이 눌러두었던 과거의 나 자신과 이별하고, 실제의 나를 시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온전한 홀로 있음을 통해 완벽한 충전을 꿈꿨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나 사이에서 한결같음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스스로를 완벽주의라는 틀에 가둬두곤 했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났을 때, 나는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진아 콘서트를 핑계 삼아 떠난 3일간의 서울 여행. 기차표를 예매하던 순간부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3년 만에 디스크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몇 년 만에 기차를 탔다. 그 자체로 생경한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서울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설렘보다는 8년 전의 서늘한 기억이었다.
2018년의 서울역은 나에게 거대한 미로이자 감옥이었다. 당시 나는 이직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려 애쓰며 눌러 담던 억울함과 짓눌림은 결국 '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왔다. 그날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표도 끊지 않은 채 무작정 기차에 올라타 앉아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다행히 근처에 계셨던 아버지가 급하게 오셨다. 하지만 당장 본가로 내려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당장 구할 수 있는 기차표가 없던 그 막막한 3시간 동안, 아버지는 나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내 팔을 부서지도록 꼭 붙잡으셨다. 우리는 서울역 근처를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는 나를 지치게 해서라도 진정시키려 하셨고, 나는 내 발가락에 피가 맺히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아버지의 팔짱 낀 팔이 얼얼해질 정도로 나를 결박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때의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정신의 끈이 놓이고 나서야 나를 짓누르던 이직의 압박과 세상의 시선에서 해방된 것이다. 망상 속에서 나는 나만의 세상을 구축했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조차 마치 무대 위의 조명처럼 즐겼다.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억눌렸던 자아를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었던 그 역설적인 해방감.
그토록 처참했던 기억이 서린 서울역에, 나는 오늘 다시 섰다. 이제는 아버지의 억척스러운 팔짱 없이도, 피 흘리는 발가락 없이도 나는 내 의지로 이곳을 걷는다. 그때의 해방이 병적인 망상이었다면, 지금의 해방은 온전한 나로서 누리는 가뿐함이다. 과거의 내가 그곳에 남겨두고 온 비명이 이제야 서울역의 소음 속으로 완전히 휘발되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공연장에서 나는 또 다른 비워냄을 경험했다. 조명이 꺼지고 권진아의 첫 호흡이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순간, 나는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 나를 용서하고 씻겨주기 위함이었음을 직감했다. 특히 락으로 편곡된 ‘우리의 방식’과 ‘Raise Up The Flag’가 이어질 때, 공연장의 열기는 정점에 달했다. 수백 개의 핸드폰 플래시가 파도처럼 흔들리고 모두가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할 때, 나는 이 거대한 하나 됨 속에 녹아들었다.
사실 나는 무언가에 깊게 빠져드는 ‘덕질’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늘 끈기가 부족하고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정의해 왔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서 나는 내 안의 낯선 열정을 발견했다. 단 한 곡을 제외한 모든 셋 리스트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는 나를 보며, 나는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누구보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달았다.
공연장에서 과거의 부채감을 비워낸 후, 나는 그 빈자리를 내가 사랑하는 일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걷기 모임의 모임장으로서 40명에 가까운 이들을 이끌고 있다. 1만 보, 2만 보를 걷는 정기 모임을 주최하며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될 때, 나를 괴롭히던 지독한 공허함은 조금씩 줄어들어 가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정을 감당해 내는 나의 ‘허리’가 대견했다. 한때는 걷는 것조차 고통이었던 내가, 이제는 타인의 발걸음을 독려하며 함께 걷고 있다.
늘 리스너를 자처하던 내가 어떤 이들 앞에서는 경계 없는 강아지처럼 스피커가 되어, 라디오처럼 쉴 새 없이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나조차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이토록 하고 싶었나 보다.
오늘은 독립서점에서 누워서 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서점원이 직접 고른 음악을 듣고 멍을 때리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생각이 자연스럽게 비워지면서 나른한 명상의 순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과정이 달리기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이라는 관성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만 남을 뿐. 비우고 채워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비워낸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고갈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인연과 감각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안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아주 적극적인 환대였다. 내가 나를 증명하려 애쓰거나 완벽한 모습으로 고집스럽게 채우려 하지 않을 때, 여행지의 낯선 공기가, 오래된 친구의 다정한 안부가, 그리고 함께 걷는 이들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그 빈자리를 비로소 채우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바람이 통하고 빛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8년 전 서울역에서 아버지가 내 손을 꼭 붙잡아주셨던 그 절박함은, 이제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걷기 모임원들의 발걸음을 다정하게 살피는 여유로 치환되었다. 나를 짓누르던 조울증의 그림자와 디스크의 통증마저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제 나는 서울역에서의 나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아찔했던 기억조차도 지금 내가 누리는 이 가뿐한 해방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워진 자리마다 내가 직접 고른 선명한 취향과 다정한 연대들이 깃들고 있다. 나는 오늘 밤, 내일의 걷기 모임을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다. 기분 좋게 비워진 만큼, 내일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채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 빈자리를 열어둔 채, 나는 나의 일상을 향해 다시 한번 기분 좋게 걸음을 내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