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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Apr 17. 2024

학습지원을 해도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

천천히, 다르게 가는 아이들과 함께 걷기

내가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음악(오케스트라) 사업과 더불어 큰 축을 이루던 학습사업은 중학생 지원사업이었다. 지역사회 내에서 취약계층 아이들의 방과 후 돌봄을 담당하는 지역아동센터에 중학생 영어, 수학을 지도하는 전문 강사 100명을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자원봉사나 대학생이 아니라 학원, 과외 등 전문적으로 학습을 지도하는 강사에게 급여를 주는 사업이었기에 사업비의 규모가 5-6억에 달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 학습을 지도할 인력은 많아도 중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는 현장의 욕구를 반영한 사업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이 사업이 2년째 진행된 상태였고, 큰 비용이 들어간 사업이니만큼 사업에 참여한 아이들의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평가가 진행됐다. 1학기 중간고사 성적과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사전/사후로 비교하였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영어는 약간 올랐으나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었고, 수학은 오히려 떨어졌다. 개별 센터별로 나누어서 보니 오른 곳도 있었으나 떨어진 곳도 있어 평균적으로 사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충격적 결과였다. 전문강사가 1년 동안 가르쳤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다니! 우리는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쓴 것인가!!!

정신을 추스르고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몇 곳과 가장 많이 떨어진 몇 곳을 방문했다. 현장의 얘기로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의 지도는 이미 늦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하위 40%의 성적에 분포되어 있었다. 평균이 그렇다 보니 중학생임에도 아예 읽고 쓰기가 안 되는 경우부터 그래도 어느 정도 중학교 수준에 따라갈 수 있는 아이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놓고 수업을 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강사가 잘 가르쳐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성적이 오른 곳은 아예 못 하는 아이들은 제외시키고 어느 정도 수업을 알아듣는 아이들로만 구성하여 센터에서 숙제도 봐주고 나머지 수업도 도와주며 적극적으로 보조강사 역할을 한 곳이었다. 현실을 모른 채 사업을 진행했을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다음 해부터 사업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1:1로 기초학습을 지도하는 사업으로 변경한 것이다. 취약계층 아이들의 학습부진은 오랜 시간 누적된 경우가 많다. 초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수많은 학습 지원이 있음에도 아이들이 학습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개별화된 지도가 아니고 개념이나 기초가 잡히지 않은 상태로 계속 문제풀이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우리 사업은 학년과 상관없이 기초학습_읽고, 쓰고, 셈하기만 가르치는 것으로 목표를 명확히 하였다. 고학년에서 공부를 못하고 꼴등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기초학습이 가능하면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다른 학습지도 선생님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초학습"을 지도하여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기초학습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지(진단지) 자체가 워낙 쉽고,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니 그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각기 다 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경계선 장애 아이들도 많았고 정서적 문제나 질병, 다문화 가정 아동 등 다양한 이유로 기초학습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서 포기하고 지역아동센터에서도 포기한 아이들, 스스로도 "나는 안돼요."라며 낮은 자존감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을 일주일에 3번씩, 1년 동안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1:1로 집중하여 아이에게 맞는 수준과 방법으로 가르쳐주자 아이들은 변화하고 성장하였다. 반항하고 의심을 품는 초반기를 지나 선생님과 관계가 생기고 작은 성취가 생기기 시작하며 아이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으켰다. 학교 성적의 반영과는 달랐지만 표정과 태도가 바뀌는 변화였고 그건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모든 아이들은 그 아이들에 맞는 관심과 사랑과 지도가 있으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출처 : 함께걷는아이들 2015년 연차보고서

본 사업의 매뉴얼*에 실린 하늘이(가명) 사례를 살펴보자. 3학년이었던 하늘이는 또래보다 눈에 띄게 자신감이 적은 아이였다. 기초학습을 평가한 결과 읽기 24점, 쓰기 56점, 수학 40점으로 초등학교 1-2학년 과정에서 학습했어야 하는 기초학습이 전혀 안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늘이는 한글을 정확히 읽고 쓸 줄 몰랐는데 특히 자음자를 잘 알지 못해 교재로 낱말을 배우며 반복적으로 자음자를 익혔다. 수학은 곱셈구구를 5단까지 외울 수 있었지만 수학을 싫어해 한 문제 푸는 것도 힘들어했다. "어, 나 구구단 싫은데. 하기 싫은데..."를 반복하는 하늘이에게 다양한 교구(숫자카드, 주사위놀이, 트랜스넘버)를 활용하여 수업마다 한두 개의 문제를 풀었다.

트랜스넘버 교구 / 사진출처 : 씨투엠에듀 홈페이지

하루는 강아지똥 책을 같이 읽는데 하늘이가 "어? 이거 나 같네? 강아지 똥 정말 저 닮았어요."라고 했다. 왜 그런지 묻자 "저도 혼자 있고, 뭘 어떻게 할 수 없으면 울어버려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우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평소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이거 이렇게 하면 속상해요"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1:1 수업 중에도 가정상황에 대해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아 하늘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

 

강아지똥 / 사진출처 : 함께걷는아이들 블로그

그렇게 진행된 수업이 4개월 정도 되어 6월 중순이 되자 하늘이는 "덧셈보다 곱셈문제가 더 재미있어요."라며 좋아했고, 연필을 바르게 잡고 획순에 맞게 한글도 또박또박 쓸 수 있게 되었다. 학습과 관련한 동화를 자주 접하며 "책은 재미있는 거구나"라며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기초학습을 모두 달성하고(아래 그래프 참고) 3학년 진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저 지금 곱셈, 나눗셈 진짜 잘해요! 학교 선생님도 잘한다고 그러셨어요!"라며 밝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할 정도로 자존감도 향상되고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 담임 선생님도 "1학기 때에는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3학년 과정을 거의 마스터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도 "눈에 띄게 정서적으로 많이 밝아졌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1년이 지나 수업을 마무리하며 하늘이가 선생님에게 써준 편지에는 '구구단을 못 외웠는데 구구단도 알게 되고 곱셈까지 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글귀와 함께 편지지 구석에 구구단이 쓰여있었다. 가장 적절한 골든타임에 1:1 지도 선생님을 만나 효과를 나타낸 대표적인 경우이다.

 

출처: 올키즈스터디 기초학습지도사업 매뉴얼 2권 p.20


한국사회는 엄청난 교육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교육의 방식과 속도를 아이들에게 맞추지 않고 아이들이 따라오게끔 하는 일방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속도와 방식에 따라가지 못한 아이들은 한번 뒤쳐진 학습을 평생 동안 따라잡지 못한다. 5-3=2라는 것을 종이 위에 써서 쉽게 풀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손가락이나 사탕이나 지우개 같은 실물을 확인해야 이해하는 아이가 있다. 우리 지원을 받던 어떤 아이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선생님, 5에서 3을 빼서 2가 되면 5와 3은 어디로 갔어요?"

아이들은 속도도 사고도 특성도 환경도 모두 다양하다. 그런 다양성은 잘못된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학교는 이 아이들을 쉽게 낙인찍고 수업 후 남겨서 나머지 공부를 시켜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 나머지 공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남아서 공부를 더 해도 아이들이 어떤 부분이 왜 안되는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또다시 종이 위에 쓰인 숫자로 문제를 더 풀라고만해왔기 때문에 나머지 공부는 그저 "벌 받는 일" 이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교실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폐교하는 학교가 속속들이 나타난다는 뉴스를 접한다. 더 이상 아이들이 많아서 개별적인 지도가 안된다, 교사가 부족해서 어렵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이런 민간의 복지사업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아동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그런 교육이 실현되기를 꿈꿔본다.  



*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의 기초학습지도사업의 매뉴얼이 3권으로 발간되었으며, 위에 언급된 사례는 2권에 담긴 내용을 쉽게 정리 요약한 것임. 올키즈스터디 기초학습지도사업 매뉴얼 전권 다운로드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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