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사업 시집보내기
앞 글에서 쓴 것처럼 비싼 시행착오를 거쳐 시작한 [기초학습 지원사업]을 9년 동안 진행했다. 읽고 쓰고 셈하기의 기초학습이라고 하면, 가르치기도 쉬울 것 같은 것이 생각되어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 싶다면 큰 오산이다. 기존의 교재를 가지고 말로 설명하는 학교 교실의 방식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먹히지 않은 아이들이다. 다른 방식, 다른 속도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2012년 당시, 전문가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교육계는 중대한 다른 이슈가 너무 많아 학습부진과 관련된 연구는 뒷전이었고 그렇다고 특수교육에서 다루는 것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뜨거운 교육열 사이에서 구멍처럼 이 분야는 소외되고 있었다. 연구자도 많지 않고 이 분야의 현장경험을 오래 한 전문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나라 교육 콘텐츠를 모두 책임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기초학습지도 교재를 꾸준히 개발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 교재와 사이트를 생명수처럼 부여잡고 사업은 시작되었다. 교재를 개발한 평가원 박사님을 만나서 사업 방향과 교육 내용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개발한 기초학습 교재들은 학년과 상관없이 기초학습 수준을 기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교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교재는 기초학습 수준별로, 다문화가정 아동에게 더 맞춤된 교재, 학년과 연동가능한 교재 등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이 교재는 학교로 모두 배포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 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교나 기관은 거의 없는 듯했다. 왜냐하면 소비가 없어 인쇄 출판이 되지 않고 있었고, 일부 되던 것도 우리 사업이 진행되는 중간에 중단되었다. 우리는 교재 개발한 곳과 인쇄소에 특별주문을 해서 교재를 사용하였다. 결국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는 이론과 교재는 존재하나 그것을 실제로 활용하고 피드백하는 현장 전문가는 없는 상태였다. 교육 현장에서는 구분해 보기 어려운 이 교재보다 그냥 시중 문제집을 대부분 활용하고 있었다.
결국 답은 우리가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몇 해는 우리 학습교사들을 가르칠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데 혈안을 하다가 사업이 3년 차가 넘어가면서는 우리 교사만큼 이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파는 사람들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매달 교사들을 그룹별로 모아 연구수업을 진행했다. 교재 분석도 하고, 교구에 대한 연구, 사례 연구 등을 꾸준히 진행했다. 사업이 5년 차가 넘어가며 우리 이상의 노하우가 쌓인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중 오래 일한 교사를 뽑아서 슈퍼바이저로 세워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를 돕고 연구수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10명의 교사와 50명의 아동(교사당 5명의 아동 지도)을 담당하는 슈퍼바이저는 사업이 곁길로 나가지 않고 깊이를 더하는데 큰 몫을 했다.
사업은 연차가 갈수록 노하우가 쌓여갔고 아이들의 변화는 확실했다. 사전/사후로 평가하는 진단지의 점수 상승보다 더 드라마틱한 아이들의 심리적, 태도적, 정서적 변화에 대한 현장의 놀라운 반응이 전달되었다. 그 힘으로 우리 사업은 9년을 지속했다.
본 사업은 단가가 높은 사업이었다. 교사 1명이 1:1로 아동을 주 3회 지도하기 때문에 아동 1인당 월 2~3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본 사업에 대한 지원 제안서를 낼 때마다 듣는 얘기는 "단가가 너무 높다. 그 돈으로 학원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 꼭 1:1로 해야 하냐" 등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기초학습을 가르치는 게 건물의 기초를 다지듯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건 일반적인 교육 방식으로는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2017,18년경부터 학습부진아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정서적 문제를 가진 아이들, 환경적 문제 등으로 인하여 학습부진 아동의 숫자가 이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느린 학습자" "경계선 장애아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초학력보장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었다.
그러던 2019년 어느 날, 잘 아는 지인분을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로또복권기금으로 [느린 학습자 지원 사업]을 대규모로 기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이미 사업은 정부전달체계를 통해 진행하기로 결정된 된 상태였다.(우리가 받아서 할 수는 없는 상태) 이럴 때 민간 지원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온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웃어야 할 이유라면 우리가 척박한 현장에서 다른 지원 없이 9년 동안 열심히 해 온 사업이 이제 사회적 필요를 인정받아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울어야 할 이유라면, 이 사업이 대규모 정부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면 이제는 우리가 지속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웃고 가슴으로는 운달까.
본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로 한 곳에 우리가 먼저 연락을 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사업이 새로 시작하려는 사업과 동일한 취지인 거 같은데 우리가 9년 동안 해놓은 노하우를 받아서 하면 좋지 않겠냐니 당연히 그쪽에서는 반색한다. 돈의 가치로 따지자면 얼마일까. 지적 재산권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쪽으로 넘긴다. 공익사업이란 이런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이 사업은 진행될 텐데, 이왕이면 시행착오 없이 진행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우리는 사업을 정리했다. 우리는 서울경기 지역의 30명의 교사를 파견했지만 로또복권사업은 전국으로 수백 명의 교사를 파견하는 대규모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로또복권의 수익금이 이렇게 좋은 일에 쓰이고 있다.) 사업을 정리한 이후 우리 노하우를 최대한 잘 전달하고자 1년에 걸쳐 사업 매뉴얼을 3권으로 정리하여 배포했다. 자연히 현장기관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시작할 때는 쉬울 거 같은 본 사업이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현장 선생님들은 몸소 깨닫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정리하던 2020, 21년은 코로나로 서로 만나기 어려운 때였다. 교사분들과 마지막 성과보고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원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새로운 사업으로 취업하실 수 있도록 도왔다. 선생님들께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하며 당황스럽게도 눈물이 났다. 사업이 전국으로 확장되어 더 많은 교사 일자리가 생겨나고 더 많은 아이들이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눈물이라니. 머리로는, 말로는 너무 잘됐다! 고 말하지만 마음은 울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남 좋은 일 시켰네. 싶지만, 사회복지란 것은 결국 남 좋은 일을 하는 게 맞다는 것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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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재에 대한 설명은 매뉴얼 2권에 자세히 나와있다. 클릭
** [기초학력보장법]은 2021년에 제정되어 202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 사진출처 : 함께걷는아이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