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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Apr 10. 2024

시설도 가정도 아닌, 거리를 택한 청소년들

청소년 시기에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오늘의 잠잘 곳 마련을 위해서 매일 노력해야 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매일의 쓸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생활. 늘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거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낫다고 판단할 때 청소년들은 거리로 나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들은 집에서 거부당하거나 생존을 위해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오늘의 잠잘 곳 마련을 위해 친구집, 여관방, 피씨방, 찜질방 그도 안되면 거리를 택하는 그들은 “홈리스 유스(Homeless Youth)”이다.


청소년들은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청소년들이 탈가정한 이유를 살펴보면, 집에선 인간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다. “탈가정”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위기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을 나오게 된 이유’(복수응답)에서 가장 높게 나온 게 ‘가족과의 갈등’(69.5%)이다. 가족과의 갈등이라는 이유 안에 숨은 내용들은 부모로부터의 학대도 있고, 쫓겨난 경우도 있다.

한국사회의 아동학대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는 뉴스에서 주로 영아 학대로 인한 끔찍한 사망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데 아동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연령대는 13-15세로 중학생 시기이다. 중학생 시기가 되어 갑자기 일어나는 학대보다 이러한 학대는 유아기부터 지속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나이가 되었을 때 학대 피해 아동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생존을 위해 가정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탈가정 청소년의 문제를 “청소년 비행”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동학대” 문제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하며 청소년 개인의 일탈행동이 아닌, 가정의 불화와 부모의 학대, 학대에서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아동학대의 피해 상황에서 주변에 의해 발견된 아동은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아동보호체계에서 위탁가정이나 시설보호체계로 들어가게 된다.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다면 자립준비청년이 된다. 그렇게 시설과 같은 국가가 정한 보호체계 안에 있어야만 지금의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을 이용하지 안/못하는 청소년이 거리에 나오게 된다면 보호체계의 사각지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왜 시설로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럼 그들도 시설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청소년 쉼터”이다. 쉼터에 가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시설을 가지 않고 거리에 남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쉼터에 가면 우선 친권자에게 연락을 하게 되어 있다. 미성년은 친권자의 동의 없이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도망쳐 나오거나 부모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은 자연히 쉼터를 피하게 된다. 또한 집단생활인 시설은 각종 규제와 규율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설을 피하게 되는 청소년들이 생겨나고 쉼터들은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전의 문제가 되었던 행동들로 인해 쉼터로부터 거부당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여기서 “시설”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시설 외에 “여러 명이 공동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곳”하면 어떤 곳이 떠오르는가? 군대, 교도소 같은 곳이다. 시설은 그런 곳이다. 전쟁 이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을 경우, 그들을 모두 모아 한 곳에서 숙식을 하도록 만든 것이 시설이다. 해외 복지국가에서는 더 이상 시설에서의 집단적 보호를 금하고 있다. 물론 아동 역시 시설에서 성장하는 것을 지양하여 가정적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고 있다. “아동 탈시설” 정책이 이미 보편화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이 가장 진전된 상태이나 아동 청소년의 경우 여전히 시설에서의 보호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시설 보호가 종료되어 자립한 청년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사실 이들의 문제는 18세에 갑자기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설의 보호 자체를 다른 대안으로 바꿔야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거리 청소년들이 시설에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자유로운 영혼들이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당연한 욕구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현재 한국사회는 장애인들이 더 이상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독립 주거에서 살도록 지원하면서 활동지원사들이 이들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해서는 시설에서의 보호가 그들의 자립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주거우선지원_Housing First”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립이 준비되면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가장 먼저 제공해야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시설에 들어가라 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립을 먼저 하라고 하지 말고 주거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 장애인도 노숙인도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거나 주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청소년에게도 “지역사회에 주거”를 제공하되 “촘촘한 삶의 지원”이 당연히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가정에 있거나 시설에 있는 경우만을 상상한다. 최근 아동복지법이 바뀌어 시설에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도 자립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지만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정책적 혜택이 돌아가리라 기대하였으나, 정부는 아동복지시설에서 타 관할시설(소년원, 치료시설 등)로 옮겨져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청소년이 시설도, 가정도 아닌 거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 대안이다. 청소년은 성인의 보호하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현재 엄연히 존재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을 부정하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오히려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가정도 시설도 아니라면, 집을 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 함께 되는 것! 이 사회가  미성년인 청소년은 독립 주거를 가질 수 없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많은 청소년의 문제는 해결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홈페이지

* 본 글은 오마이뉴스(24.3.26) 연재 기고글 중 하나이며,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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