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살아야지
어릴 적에는 그 어떤 고민도 걱정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나이가 차기 시작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고민도 걱정도 늘어난다. 아마 잘 지내는 것 같은 그들도 각자만의 고민, 걱정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스물 중반쯤 되었을 때였나, 가족의 불화와 자립의 대한 걱정으로 매일이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언제쯤이면 나는 가족 안에서 평안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이 분야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끝없이 의문을 가졌다. 사실 바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이토록 고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나오는 첫 답은 ‘만만하지 않다’, ‘힘들다’이다. 성인이 되고 10년 하고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내 삶이 편안하다, 안정됐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학생시절부터 꾸준히 심해졌던 부모님의 불화는 사실상 내 성격과 생각, 마음가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불안한 날들이 많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일부러 내 안에 평안을 찾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았다. 그 잠깐 몇 시간의 평안을 찾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몇 달의 시간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언젠가는 내 삶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이에게 인정도, 사랑도 받는 것이 쉽지 않을까, 왜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의 삶을 원망하는 나 자신이 또 미워서 좋아해 보려고 ‘괜찮아, 지금 이리도 고통스러우니까 나중에는 꼭 많이 행복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린 적도 있었다. 얼마 안 돼서 그 나중이 도대체 언제쯤일까 의문을 품었지만 말이다.
오래 머무르던 힘든 일이 하나가 끝이 보이면 새로운 힘든 일이 생겨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한때는 내 삶이 누군가의 재미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게임 속 캐릭터에게 끊임없는 미션이 주어지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의 게임 속 캐릭터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게 맞는 것이라면 제발 그만해 주길 바랐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참 고단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까짓 거 별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고, 누군가는 겪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만만하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사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냥 하면서 지낼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때로는 꿈이었던 무언가를 뒤로 젖혀두고 살아가는 것에 집중해야 할 수도 있고, 그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다 놓치는 것들도 생길 것이다. 자신의 삶이라는 길이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삶은 그럭저럭 오를만한 오르막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경사가 더 심해져 자칫하면 뒤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오르막길이 되었다. 끝이 있는 것이 맞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오르막길에도 끝이 있는 것은 맞았다. 어느 순간에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보니 예전보다 완만해져 있었다. 나는 내 삶의 길이 평탄해지기를 크게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고단한 날들 사이, 사이로 작은 평안들이 자리 잡기를 원한다. 사는 것은 참 고단한 일이고,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것이니 말이다.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지치고 지쳐서 걸을 수 없으니
어디쯤인지 무엇을 찾는지
헤매고 헤매다 어딜 가려는지
꿈은 버리고 두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가끔씩 그리운 내 진짜 인생이
아프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춥고 아프고 위태로운 거지
꿈은 버리고 두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
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임재범,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