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한 사람들 중에는 부모의 지원이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부모가 집을 사준 친구를 보며 자신의 부모가 겨우 전세금만 도와줬다고 서운해하거나, 친구가 부모 도움으로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것을 탓한다. 또, 자녀를 돌봐주는 친정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은 그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서운해하거나, 부모가 사랑이 없다고 대놓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이 누리는 것에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친구들의 좋은 점만을 가져와 자신의 부모와 비교하며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태도는 기가 차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몇십 년간 애지중지 키워 결혼까지 시켜놨더니, 오히려 남의 부모와 비교하며 사랑 없는 부모라고 비난받는 상황은 부모에게 큰 상처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세리머니를 치르고도 그 함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좋아서 결혼은 했지만, 세상과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일상에서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부모나 세상의 탓으로 돌려지며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기 마련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갉아먹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주인의식의 진정한 의미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도 그것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철학자 헤겔은 주인과 노예를 이렇게 정의한다. 주인은 자신의 주인 됨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이고, 노예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주인에게 복종하고 주인이 베푸는 혜택에 의존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주인의식이란 자신의 주인 됨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결단력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자존감과 주인 됨을 지키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며,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의 세리머니는 사랑하는 남녀가 많은 이들 앞에서 양가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 정치적 독립을 선언하는 자리다. 이러한 독립 선언을 통해 자신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면 삐뚤어진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과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 생활에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어느 날, "아버지,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오셔서 객석에 앉아 자식들이 펼치는 연극을 편안히 감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애써 이 말을 외면하시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강한 구심력을 가지고 있다. 이 구심력은 매우 강해 웬만한 원심력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만든 세상에서 독립하여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 세상에서 내가 주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취업 후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취업과 동시에 아버지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신대방역 부근 옥탑방에서 지내던 선배의 집에 잠시 의탁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 보면 언덕배기에 빼곡히 늘어선 다가구주택과 그 위의 옥탑방들이 떠오른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는 양가 부모님께 결혼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우리 두 사람이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요청했다. 결혼 날짜와 예식장 선정, 혼수와 예단 생략 등 결혼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두 사람이 협의해 스스로 정했다.
지금은 결혼 당사자들이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혼식이 부모들의 행사였던 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강한 구심력에서 벗어나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고, 그 여정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결혼 후에도 나는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나의 가장됨을 인정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만든 세상의 가원이면서 동시에 제가 만든 세상의 가장입니다. 제가 만든 세상에 대해서는 아버님이 저에게만 의견을 주셔야 하고, 그 의견을 참고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제가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묵으로 나의 요청을 승인해 주셨다.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현실에서 가시밭길과 같았다. 결혼식 패물과 살림살이를 두 사람의 카드 할부로 마련했고, 결혼 후에는 그 할부를 갚느라 허리가 휘었다. 그때의 고생 덕분인지, 이후로는 절대 카드 할부로 무언가를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우리 부부는 적은 보증금에 맞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집 빌라에서 살아야 했다. 첫째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해야 했던 아내에게 이런 환경은 치명적이었다. 결국 아내는 10년 이상 허리와 다리에 묵직한 통증을 호소하며 좋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해야 했다. 그 시절 후배의 전셋집 아파트를 방문하고 돌아와 햇빛 잘 드는 그 집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포기했던 선택은 결혼 초반 10년을 힘겹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나는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부모에 대한 서운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내가 주인이 되기 위해 한 선택으로 부모에게 서운해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지금도 구심력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결단한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동시에 정신적, 사회적, 정치적 독립도 얻어냈다. 우리 아버지는 무대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결혼 후 많은 부부 갈등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양가 부모가 만든 세상의 영향권에 휩쓸려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결혼 갈등을 줄이는 핵심은 양가 부모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결혼 당사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인의 길은 험난한 광야 같을지라도, 그 길 끝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사소한 눈앞의 이익 때문에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주인 됨과 자존감을 포기하려 하는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신, 왜 노예처럼 타인의 의존 속에 머물기를 택하는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나 도움은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람이 더 냉혹한 사회, 조직, 권력, 권위에서 자신만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상식적으로 어불성설이다. 지금 부모에게 서운함과 원망을 느낀다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내 삶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을 말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주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모든 서운함과 원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는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라고 반응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삶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린다. 이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인으로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결혼한 당사자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삶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부모 역시 자녀가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물론, 부모의 이러한 태도가 처음에는 자녀에게 서운함과 감정적인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과정은 결혼한 자녀들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때로는 힘들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이 틀어지면 모든 상황이 혼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고 신혼을 보내는 부부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게을리하면, 평생을 세상의 노예로 살게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