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가까운 베트남 베이비시터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화끈하고 명확한 사람은 이모가 처음이었다. 그러했으므로 나는 다솜이 베이비시터로 물망에 오른 몇 명의 이모들보다 우선순위로 이 이모를점찍어두었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이 장군 같은 이모를 우리 집으로 처음 들인 날, 이모는 수줍지만, 예의 바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눈에서 발사되는 총기가 새로워 보였다. 우리 집을 스캔하던 그 눈빛은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집에 아기가 태어나면 티브이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침대를 거실 티브이가 가려지는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모는 내게 아기를 키우며 필요할 아기옷을 정리할옷장, 기저귀정리함, 의약품구비함 등등의 역할을 할 가구와 물품을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 한국의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 '라자다'에서 골라 보여주며 내게 사는 것이 좋을거라며 사기를 권유 했다.
12년 만에 새로 맞는 육아 라이프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인지 이모가 내게 준비하라던 물품을 보면서 '이 분.. 아주 전문적인 분이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이야기해주었던 이모 자신의 경력은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물품을 하나하나 보며 고민하던 그녀의 얼굴에서는 친정엄마와 같은 세심함도 느껴졌다.
사실,
'이 엄마는 왜 이렇게 준비가 덜 된 것이야'
하는 그런 표정부터
' 하나하나 첨부터 다시 다 가르쳐야 되겠네. '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신생아를 키우는 일 중에 많은 기술이 필요한 목욕시키기에서 이모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다솜이 몸에는 여전히 내 몸속에 있었을 때 부터 있던 탯줄이 배꼽 위에 덜렁 달려있다.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는 배꼽과 그 주변에 맺힌 핏방울은 보기만해도 내 살이 찢긴듯 아파보인다.
욕조 두 개에 정수기 물을 덥혀 따뜻하게 하고서는 거즈 수건 여러 장으로 다솜이 몸에 감싸더니 다솜이가 놀라지 않고 포근하게 느끼도록 세심하고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는 이모는 의자도 없이 쭈그리고 앉아서 꽤 힘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는 내색없이 꿋꿋하게 끝까지 목욕을 시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그녀의 무릎과 허리가 걱정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좀 더 편하게 목욕을 시킬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아야 겠다.
목욕 후에는 생리식염수 하나를 떼어내 눈과 코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는 나머지로 배꼽 소독을 해준다. 면봉으로 배꼽 주변을 닦는데 나는 행여나 다솜이가 아파할까 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이모는 침착하고도 세심하게 배꼽을 세척해준다.
딱딱해 보이던 이모는 다솜이를 돌볼 때만큼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아진다.
아기의 다양한 표정에 같이 응해주고, 손가락, 발가락 움직임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작은 몸짓을 무척 신기해하며 다솜이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내보여 나를 웃게 한다.
때로는 다솜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는데, 아이가 아주 예쁘게 나오면 내게 "마미~마미~ 이것 좀 봐."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표정을 한껏하고 내 품에 안길듯 뛰어오는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땐 저렇게 다 큰 딸을 언제둔걸까? 라는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녀는 15년을 군대에서 강사로 생활하다가,
하루아침에 사고로 딸을 잃고,
아기를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밤에 아기를 돌볼 이모가 없어 힘들어할 때 이모는 주저 없이 자신이 남아서 돌봐주었고, 그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인생의 주마등처럼 지나간 한 많은 옛 이야기들을 꺼내며 애써 울음을 참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있는 힘껏 그녀를 위로해주었고, 또 그녀보다 내가 더 행복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쉼 없이 다솜이를 돌봐주던 이모는 자신이 아는 베이비시터를 야간 이모로 소개해주었다.
보통은 고용주가 직접 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일하고 있는 현지 사람이 아는 사람을 소개해서 데려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책임감이 강한 이모는 자신이 힘들고 피곤하니까, 자리 비우는 것이 미안한 나머지 내게 야간 이모까지 소개해준 것이다.
야간 이모가 근무를 시작한 지 이틀째다.
그녀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 언어로 상냥하게 말을 걸어온다. 번역기도 쓰지 않고 말이다.
그녀는 아이가 밤에 빠빠를 먹고도 잠에 들지 않자 아이를 안고 베트남 동요를 불러주면서 춤도 춘다.
'뭐지? '
하는 생각으로 잠시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모는 다솜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다솜이를 안고 베트남 동요 부르기와 율동을 멈추지 않는다.
밤에는 너무 피곤해서 2-3시간마다 깨서 모유 유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야간 이모의 색다른 육아를 지켜본다고 첫날은 날밤을 꼬박 새워버렸다.
얼른 베트남어도 익숙해지고 야간 이모의 색다른 육아방식에도 길들여지기를 바랄 뿐이다.
야간에 잠들지 않는 내 이야기를 들은 장군같은 이모는안타까운 나머지 근무시간이 다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내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에 있는 내용으로 이렇게 보내왔다.
그녀는
내가 가끔 멍하게 있을 땐 우울해 보인다고 걱정한다.
"당신은 아기 엄마니까 꼭 행복하세요.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
그녀가 매일 하는 말이다.
베트남에서 육아를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이곳 엄마들이 아기를 좋아하고 정성을 다해 아기를 돌봐주는 모습을 보며 매일 놀라고있는 중이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이들의 아기를 성심성의껏 최선과 책임을 다해 돌봐주는 베트남여성들의 삶이 고달파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서슴없이 가장의 역할을 자처하는 그녀들의 생활력은 위대하고 고귀하게까지 느껴진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베트남 여성들은 모성애가 강하다.'
라는 것.
내가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인생 가장 큰 행운이자 기회이고, 행복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첫째가 지금 다솜이 만할 때
친정과 시댁에서 신세를 지면서 양가부모님 도움을 받았던 적의 생활이 자꾸 떠오른다.
돈을 주고 내니를 쓰는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그때의 나와 아이를 돌봐주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