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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자리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구나

by 햇살나무

아들이 방학을 맞이하고 벌써 한달과 10여일이 지나간다. 방학이라고 여행을 떠난 가족들이 주변에 보이지만 나는 이번 방학때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 모든게 귀찮아서일거다. 한국에 사는 친정식구들과 시댁식구들에게는 중3 올라가는 아들에게 중요한 시점이 될 거라는 핑계를 댔다. 그런데 그 핑계가 현실화 되어버렸다. 말이 씨가 되어 그 씨가 나무를 피웠나보다. 이번 방학은 잊지 못할 것이다. 평생. 엄마라는 자리가 이렇게 초라하고 외롭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서글픈지 몰라서. 내가 어렸을 적에 바라본 엄마라는 분은 바쁘고 보람차보였는데.. 2살인 딸과 14살인 아들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내야 하는 이 한달이라는 시간이 내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오늘은 누구를 기쁘게 해주었나 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는데 결국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엄마로서 자식에게 잘해주고 있는 이야기를 쓰려니 무척 부끄러워서 글쓰기를 미루고 있었다. 누구를 기쁘게 해 주는 일 . 언제나 타인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친절함이 박힌 눈도장을 박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나는 꼼짝마라 아들과 딸에게 묶여 지내는 하루 이틀이 점점 질색해질 정도로 싫었다. 자기 꼬리를 물고 뱅뱅 그 자리를 도는 개 처럼 한 자리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어지럽게 뱅뱅 돌고 있는 내 일상에 신물이 났다. 참을성도 바닥이 나고, 해줄 음식의 메뉴도 생각나지 않고, 놀아주려 힘을 내봐도 체력에 에너지는 정말 참기름짜듯 마지막 한방울 까지 아낌없이 쥐어짜기를 너무 일찍 해버린 탓인지 '지겹다.' 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한숨만 내뱉기 일쑤였다. 어떤 날에는 밤에 맥주를 마셨다. 아들과 딸의 일상이 끝나지 않은 저녁이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냉장고에 남편이 사다 짱박아 놓은 맥주를 꼭 훔쳐먹듯 누가 볼새라 꿀꺽꿀꺽 반캔을 한 목에 비우고 나머지 반캔과 또 짱박힌 소주 하나를 꺼내 마셨다.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는 내 정신상태가 희한하다 싶어 이 갈증의 끝이 어디까지인가 알아내려 알콜을 내 몸에 냅다 부어버렸다. 어느 시점에 거나하게 취해선 유해진 성질과 표정으로 아들과 딸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먼저 잠들어버렸다. 그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 일상, 어제는 누가 어떻게 마무리를 지었는지 모르게 아들과 딸은 제자리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나는 멍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집을 치우고 밥을 지었다. 그 날 밤도 , 그 다음 날 밤도 그렇게 술과 함께 유해진 얼굴로 아들과 딸에게 고맙다, 고맙다는 주정을 부리며 뽀뽀세례를 퍼부었고 기분 좋은 내 모습에 아들과 딸도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쿵쿵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웠다. 사랑이 꽃피는가 싶었는데 내 몸 속에 살들도 살판이 나서는 임신 안한 홀몸으로 몸무게의 최고점을 찍으며 체중계는 매출 순이익 하반기 최고실적을 달성한 기업들의 주식이 그만큼 올랐으면 미치도록 좋겠다 싶을 정도로 신이 난 숫자를 찍어놓고 있었다. 이러다 내년에 만약 건강검진이라도 해서 어딘가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자라나는 아들과 딸을 위해 자중해야 겠다 싶어지게 했다.

아침 일곱시엔 아들 수영강습이 있어서 일찍 깨워 내려보내고 딸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갔다. 모두 공복에 이른 아침을 시작하니 몸에 있는 살들은 일도 안하고 내 체력은 바닥이었다. 딸은 너무도 활발하여 유모차에서 탈출을 하고 다다다다 놀이터로 뛰어가는데 햇볕이 강타해서 눈이 부시게 앞이 어지러워도 신난 딸이 행여나 다칠새라 뒤뚱뒤뚱 뛰어가 업고 뛰고, 안고 뛰고. 어째어째 놀아주곤 아들이 수영강습과 연습을 끝낸 한시간 반 뒤에 함께 집으로 올라와 부랴부랴 아침 준비를 한다.

머리도 멍하고 귀도 먹먹하고 손도 저리고 어깨도 뻣뻣하지만 눈 앞에 있는 애들만 바라보며 상 위에 음식을 나르기 바쁘다. 지저분해진 식탁위 남긴 음식을 모조리 냉장고로 집어넣고 후다닥 설거지도 해치운다.


아들은 중3을 앞둔 방학이라서 공부습관 기르기가 이번 방학의 미션이 되었다. 어느 책에서 66일간 노력하면 힘든 노력이 쉬워진다는 걸 적용해보려 9시부터 12시까지 영어필사와 수학오답노트, 밀린 학원숙제와 한국책 독서를 하기로 했는데 아들은 매번 방에 들어가서는 잠깐만 쉰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10시나 11시까지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나와 어린 동생이 거실에서 영상을 틀고 율동을 따라하며 노래를 부르니 공부하는 분위기가 안 잡힌단다. 안되겠다 싶어 아들 혼자 밖으로 내보내면 허송세월 시간만 보내고 오고, 또 나랑 둘째가 바깥에 나갔다 와도 아들은 혼자 집에 있으니 적적하다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다하면 피자사줄게, 이거 다하면 라면 끓여줄게, 이거 다하면 ... 이런 조건을 걸고 시키다가 지갑에 빵구가 나서 이젠 이러지도 못하고 어떡하나 싶었다.

그러다 남편과 함께 카카오톡에 아들을 초대해서 아들이 한 숙제를 올리는 방을 만들어 함께 관리해주기로 했더니 요녀석이 아빠는 무서워해서 제 시간에 숙제를 올려주는 것이다. 역시 엄마는 만만한가 보다.

삼시세끼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인데 공부시키랴, 운동시키랴 놀아주랴 청소하랴 설거지 하랴 빨래하고 개키랴 정리하랴 ... 이 표시 안나는 일을 무한반복하며 내 감성이 싱크홀로 빠질 때 마다 나는 저절로 엄마 생각이 났다. 그렇게 그렇게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금. 뒤돌아보니 내 손길로 부쩍 큰 아들과 딸의 모습이 오늘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알맘발맘 잘도 걷는다 싶더니 어느새 딸이 뛰어 다닌다. 내게 '엄마' 비슷한 발음을 해서 깜짝 놀란 어느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온갖 말을 다 따라 한다. 배가 고픈 때가 되면 스스로 맘마를 달라고 하는 딸과 스스로 라면을 찾아서 끓여 먹는 아들. 지금 이 글을 적는 데도 아들이 자는 동생이 깰까 옆에서 보초를 서고 잠시 깬 동생을 토닥여 다시 재워줬다.

지금껏 나는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서 내가 저절로 큰 줄 알았다.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이 가끔 생각날 뿐이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내게 닿아 지금의 내가 됐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라는 자리에 있어보니 엄마가 보였다. 그냥 크고 그냥 늙은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고생과 보람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울면 그 어린 마음에 엄마가 나보다 더 여리구나. 어른인데도 엄마는 울보구나. 속으로 참지 못하는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했는지 감히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수 많은 희생을 하면서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낸걸까 기가 막힐 정도로 나 자신이 창피하고 어이가 없었다. 참 철이 없었구나. 하루에 두어번도 넘게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알아버렸다.

언제까지나 나는 엄마를 앞서지는 못할 것이다. 엄마가 지나간 그 자리를 그대로 밟아가며 엄마 뒤에서 엄마를 따라가겠지. 나를 위해 엄마라는 자리를 지켜준 엄마가 새삼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행복하기만 하다는 엄마. 나도 엄마만큼 참고 엄마만큼 견뎌내어야 엄마처럼 일흔이 넘으면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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