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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Oct 02. 2021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할 수가

동화 <쿵푸 아니고 똥푸>


그런 책이 있다.

그저 독자로 살고 싶게 만드는 책.


사실 이 책을 읽은 지 꽤 됐다.

읽고 나서 너무 좋았으나

나에겐 힘이 쭉 빠지는 일이기도 했다.


 

유쾌하며 따뜻한 책.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이에게 딱 그런 작품을 만나는 일은 반가우면서도 맥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러닉 하게도 말이다.

  내가 강정연 작가의 <버럭 영감>을 만난 뒤 열혈독자가 됐을 때처럼
내가 유은실 작가의 <내 이름은 백석>을 만나고 기꺼이 팬이기를 자처했을 때처럼


나는 <쿵푸 아니고 똥푸>를 읽고 단박에 차영아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어 버렸다.


#쿵푸 아니고 똥푸
  표제작 '쿵푸 아니고 똥푸'의 제목이 주는 느낌은 그냥 그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제목에 갖다 붙인 건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참 따뜻하고 씩씩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소변이나 대변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긴장감 때문에 배가 아파도 학교 화장실에서는 큰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엄마나 아빠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

  황당한 아이의 실수에 선생님은 또 얼마나 진심으로 걱정하고 살갑게 대처하는지, 읽는 이까지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읽은 동화의 선생님 중 <마틸다>의 하니 선생님에 버금간다 하겠다.


#오, 미지의 택배
  제목부터 경쾌한 두 번째 작품도 좋다.

'쿵푸 아니고 똥푸'의 첫 문장도 철학적이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잘 담고 있는 명문이지만,

 '오, 미지의 택배'에서 미지가 '어른'의 기준을 정해놓은 기준도 귀엽다.

  누군가에게 온 택배 상자에서 미지는 운동화를 선물 받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강아지를 만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다시 이별을 할 때 미지의 친구였던 강아지가 자신이 다시 태어나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모른다고 말하면 장면은 전율이 일어난다.

 다음날 학교 가는 길, 미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미지 친구인 강아지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묵직한 감동이 서서히 차오르는 작품이다.


 #라면 한 줄
 마지막 수록작인 '라면 한 줄'은 겁이 많아서 밖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라면 한 줄'만 구해오는 쥐의 이야기다.


 먼 곳까지 가서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삼겹살을 가져오곤 하는 다른 쥐들은 모두 '라면 한 줄'이라고 주인공을 놀린다.

  하지만 고양이의 방울을 달러 가게 된 '라면 한 줄'이 자신을 위협했던 고양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해주는 장면은 예상외의 반전이다.


 자신에게 위협적이던 고양이가 다른 아이들이 괴롭히는 걸 두고 보지 못했던 '라면 한 줄'의 행동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런 '라면 한 줄'에게 고양이가 '고맙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또 얼마나 읽는 이를 뜨겁게 만드는지.

아. 감동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며 나는 것이다.

 # 책장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참 건강하고 따뜻하며 씩씩하기까지 한 사람이겠구나.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나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어 진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작가가 부러우면서도 감사하다.

  한데, 이렇게 유쾌하고 따스한 책을 읽고 나면 난 그저 독자로만 살고 싶어 진다.



[도서] 쿵푸 아니고 똥푸

작가: 차영아

그림: 한지선
출판사: 문학동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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