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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Aug 16. 2021

마음속에 숨겨진 마법의 힘

동화 <이상한 열쇠고리>를 읽고

 내 마음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요술공주 세리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리의 요술봉만 있으면 세상을 모두 얻은 듯 행복할 것 같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

그때 내가 그토록 원했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도 <이상한 열쇠고리>의 지영이처럼 늦게 일어난 날, 지각을 하지 않아서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체육복이나 준비물을 제때제때 잘 챙겨 와서 순조롭게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이 바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1학년 때 내 짝이었던 아이는 ‘김성일’이라고 김일성과 이름이 비슷했으면서도 언제나 내 이름을 갖고 놀려댔다. 그러면 나도 별다른 대꾸도 못하고 속상해하며 지영이를 놀려대는 박동구처럼 따끔하게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바람은 시험문제를 미리 알 수 있거나 누군가 시험을 대신 치러줬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지 싶다. 요술공주 세리의 요술봉이 가장 빛을 발하며 멋진 요술을 부릴 때는 쌍둥이 동생이 시험을 볼 때 도와주었던 거였고 도라에몽이 주인공 아이에게 준 마술 식빵은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먹고 싶었다. 그 마술 식빵에는 글씨를 쓸 수 있었고 먹으면 머릿속에 그대로 입력이 되는 거였다. 시험 때 외워지지 않는 내용을 써놓고 먹기만 되니 얼마나 신통한 시험 준비란 말인가.


  <이상한 열쇠고리>에서 지영이도 ‘열쇠고리’가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열쇠고리라는 사실을 알고 나선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주문하기 시작한다. 받아쓰기 시험을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지영이는 열쇠고리를 쥐고 간절하게 빌어보기도 한다.


  ‘시험을 내일 다시 봤으면 좋겠어. 내일 시험 보면 다 맞을 텐데.’ 그리고는 받아쓰기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자 심술궂은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 안으로 몰아치며 받아쓰기 공책을 와락 들어 올려 운동장으로 내동댕이쳐버린다. 그리곤 선생님이 공책을 주워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동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받아쓰기 공책들은 철새처럼 멀리멀리 날아가 버리고 만다. 지영이가 원하는 소원이 더 커지고 많아질수록 점점 더 큰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영이는 자신에게 들어온 요술 열쇠고리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간다. 자신을 괴롭히는 박동구가 줄넘기를 반에서 제일 못하기를 바라며 복수의 도구로까지 이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하고 은근히 기다리는 마음까지 생겨난다.

  결국 박동구는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줄넘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체육시간을 끝내야 했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아이들을 놀리는 더 동구를 보자 지영이는 더 강력한 벌을 원하게 된다. 그러자 어디서 가 웽웽 날아온 호박벌이 박동구의 이마에 침을 탁 쏘아버리는 게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소원이 척척 이루지는 일을 신기하던 지영이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날이 친구들에게는 ‘이상하고, 무섭고, 가장 재수 없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곤 체육복을 잃어버렸던 아이가 자신의 체육복을 지영이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선물 받은 빨강 연필을 잃어버린 아이도 지영이에게 자신의 연필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 순간 바라는 게 되는 것은 당연히 나에게 차라리 좋은 일도 일어나지 말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적인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되는 순간, 열쇠고리에 달린 하얀 새가 지영이를 오늘 아침 학교 가는 집 앞으로 되돌려 준다.


  어쩌면 ‘이상한 열쇠고리’의 가장 고마운 마술은 이 마지막 부분이 아닐까, 한다. 다른 날보다 조금 늦어 지각할 수도 있고 체육복을 입지 않아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아침으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는 것. 내 소원을 들어주는 열쇠고리에 의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힘차게 뛰어갈 수 있는 것. 그래서 ‘이상한 열쇠고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의 힘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어른이 된 지금 다시 한번 소원을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다른 소원들. 그러나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기적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런 ‘이상한 열쇠고리’ 같은 마법의 힘을 누구나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창작과 비평사 ‘창비 좋은 어린이책 독서감상문 대회’ 가작

#창비 독서감상문 대회 수상작

#창비 좋은 어린이책 독서감상문 대회 수상작



*후기_2021년 8월

  이때는 창비 어린이책 독서감상문 대회에 어린이 부문 외에 일반부문이 있었다. 동화를 좋아하고 자주 사서 읽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눈이 번쩍할만한 소식이었다.


 게다가 수상작 부상이 창비어린이 문고 50권이었다. 창비출판사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사서 읽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못 읽은 책도 많았던 터였다.


 동화도 좋아했고,

독서감상문이라 리뷰 쓰는 것도 즐겨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때 젯밥에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반부는 최우수 감상문 1편, 우수감상문 2편, 가작 3편을 선정한 것으로 기억한다.

 최우수와 우수작에는 상금이 있었던가?

그것은 모르겠으나 가작은 상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쓴 독서감상문은 가작으로 뽑혔고 나는 꿈처럼 창비어린이문고 50권을 부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창비어린이 독서감상문 대회는 계속 열렸으나 일반부 응모는 아쉽게도 없어졌다.

이 책들이 부상으로 받은 창비어린이문고다. 50권 중 여러권은 나눔했고 또 여러권은 책꽂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꽂혀져있다.

서현 작가의 그림이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그때 서현 작가는 그림만 그렸으나 지금은 글도 쓰는 동화작가다.

작가: 오주영

그림: 서현

출판사: 창비

발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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