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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Sep 22. 2021

삶은 영화보다 초라하고 꿈보다 남루하지만

영화 <즐거운 인생> 속으로

  어느 책에선가 '삶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은 것'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시원한 펜션도 아니고 호화로운 호텔도 아닌 왠지 정갈하지 못한 이부자리와 손때 묻은 거울 그리고 천장 한 귀퉁이에는 거미줄이라도 살고 있을 것 같은 여인숙이 인생 같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그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아닐까.


 그럴 때 가장 용기 내서 해보고 싶은 일은 혼자만의 여행이다. 가벼운 손가방 하나에 좋아하는 책 한 권 그리고 노트와 볼펜 하나를 넣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 진다.


  하지만 편하게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도, 사치스러운 휴식의 시간도 제대로 낼 수 없는 나에게 이런 혼자만의 여행은 그저 잠깐의 상상 속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이럴 때 만난 영화가 아이러닉 하게도 <즐거운 인생>이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왕의 남자>를 인상 깊게 봤고 또 <라디오 스타>에 열광했던 나에겐 사막 같은 인생의 순간,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름 없는 ‘거시기’들을 살려냈던 <황산벌>과 천대받는 광대들의 삶을 신명 나는 굿판으로 끌어냈던 <왕의 남자>, 지금은 한물간 왕년의 스타 로커 <라디오 스타> 등 사회의 약자인 마이너리티에 관심을 쏟아온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무기력한 40대 가장들을 한 복판으로 불러냈다.


 대학시절 록밴드 ‘활화산’의 멤버로 의기투합했던 기영(정진영 분), 성욱(김윤석 분), 혁주(김상호 분)는 각자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지쳐가는 중이다.


 직장에서 잘려 백수 신세가 된 기영은 아내(김호정 분)의 눈칫밥 속에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성욱은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며, 혁주는 중고차 매매를 통해 해외로 떠나보낸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아빠다.


 그러던 어느 날 활화산의 멤버였던 상호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을 계기로 조우한 세 남자는 기영의 부추김으로 밴드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심한다.


 상호가 맡았던 보컬의 빈자리를 그의 아들 현준(장근석 분)이 채우고 클럽 공연을 시작하면서 세 남자는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그의 아내들과는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아등바등 현실을 붙들고 살기보다는 꿈을 찾겠다며 밴드를 한다는 고백을 하는 성욱. 그에게 아내는 화를 내며 말한다.


  “나라고 하고 싶은 게 없는 줄 알아?”라고. 그러자 성욱(김윤석)이 아내에게 말한다.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하지만 현실을 위해 접었던 꿈에는 이미 먼지가 덕지덕지 앉아있으며 또 가족과 경제적인 문제를 뒷전으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아내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떠나고 만다.


 이 영화에 대한 평들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뻔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라던가, ‘아빠! 힘내세요.라는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가 떠오르는 영화’.


그래서 <즐거운 인생>은 ‘위기의 남편들에게 다소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공감대를 보다 크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남편들의 활력에 동반되는 여성들의 한숨에 조금만 더 시선을 쏟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꿈을 찾아 밴드를 하고 노래를 하며 쇼를 하는 40대 중년 남자들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라면,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목을 매고 일상의 톱니바퀴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아내들은 방관자들이다.


그녀들은 그들에게 기껏해야 ‘철 좀 들어’라는 말을 내뱉고 그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해 집을 나가며 심지어 무능한 남편을 버리고 새 삶을 구축하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들이다.


  문득 20대 대학시절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꿈을 찾아 밴드를 결성하고 젊음의 상징인 홍대 클럽에서 마음껏 ‘터질 거야’를 불러제끼고 문신을 하고 염색을 해대며 젊은 친구들과 새벽까지 그들의 음악과 꿈에 대해 건배를 하는 기영와 성욱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들에 동화돼 환호하고 열광을 보내고 있었지만 내 현실의 모습은 그들보다는 그의 아내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좋아, 멋지다!

남루하고 허접한 현실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무모하지만 이제라도 꿈을 향해 달리는 거야! 그런데 부자로 살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떤 평론가가 이 영화를 보고 던졌던 질문이 떠오른다. 성적 착취와 경제적인 착취 중 어떤 게 더 나쁜 걸까?


  이 영화의 한계는 ‘철들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백일몽’이라는 한 줄 영화평처럼 남자들만의 판타지다. 여성에 대한 배려나 시각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왕의 남자>부터 <라디오 스타>를 이어 꾸준히 제기되어온 이준익 감독의 한계이자 <즐거운 인생>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기에 굳이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인생>은 흥겨운 영화다. 양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고 철없는 네 남자의 인생 속으로 기꺼이 초대받고 싶은 영화다.


 그들이 조금은 어설프게 연주하는 기타 반주에 맞춰 ‘터질 거야’를 불러제끼고 싶고, 서울을 벗어난 어딘가에 가면 있을 것 같은 ‘활화산 라이브 조개구이’를 삼삼오오 찾아가는 대열에 끼여 어깨춤을 추며 그들의 콘서트에 즐겁게 동참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내 안에 깊숙이 잠자고 있던 꿈들이 일제히 깨어나 이대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살면 ‘터져 버릴 거야’를 외쳐대는 것 같고, 젊음의 매력이 한껏 빛을 발하는 장근석은 이제 ‘즐거운 인생’을 살라고 유혹한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 오래도록 <즐거운 인생>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난 잃어버렸지.

  오래전~ 푸른 하늘 아래 뜨겁던 나를.

  이제는 일어나 나의 꿈을 찾아서 갈 테야’


  오래전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을 깨운 영화, <즐거운 인생>. 이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말했다.


  “나는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이상주의자를 지향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지만 땅에서 발을 떼지도 않는다.

  삶은 영화보다 중요하다.”


  그렇다. 현실을 잊을 수는 없지만 꿈을 좇아 구름 위로 떠다닐 수는 없지만. 그래도 꿈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오늘이라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미래라는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즐거운 인생’이 아닐까.

삶은 영화보다 초라하고 현실은 꿈보다 남루하지만, 중요하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현실과 꿈의 괴리가 큰 이 영화를 보면 허기가 몰려오는 공복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오히려 나는 충만함을 느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영화 속에서 현실을 버리고, 꿈에 올인하는 네 남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맛보며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이준익 감독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찾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

감독: 이준익
한국 |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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