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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라 Jan 30. 2022

이제 회사 나오지 마세요 (feat. 권고사직)

- 인사담당자로 살아가기

연말이다. 실적 조사하고 사업계획 수립하고, 평가결과 취합하고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다. 회사 성과는 나날이 안 좋아지고 원인과 결과, 누구의 잘잘못을 탓하기 위함 인가.  

비용엔 인색하고 목표엔 관대하다.




본부장이 점심 식사하면서 독대하자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묻는다.

‘D는 사내 평판이 어떠한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 같아?’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인원감축 예정이다. 준비해라.'



대상자가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몇 달 전 이 직무는 계약직 전환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물어본 직원일 거라고 추측한다.

‘해당 직무들은 단순 업무들이고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게 가능할 거 같습니다. 다만 현재 근무하시는 분들은 장기근속자이고 이분들이 자연 퇴사하시게 되면 근로조건을 바꿔서 신규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 회사 자료들을 조사해봤을 때… 생략’



그리고 또 누구지?

최근에 보직 해임된 사람, 연말 인사평가 좋지 못한 사람? 심적으로 혼란스럽다.

인건비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는 거 아닌가?

매출 목표 달성 못한 것도 원인 아닌가?

회사 로드맵이 잘못 설정되고 의사결정이 올바르지 못한 책임도 있는 거 아닌가?

힘없고 나이 많은 직원에게만 책임 전가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 가?



발생될 노무분쟁을 예방하고자 노무사를 선임한다. 우리 계획은 이러이러한데 어떤 것들을 준비할까요?

아무 걱정 없이 웃으며 지나가는 당사자들과 눈 마주치고 인사한다.




'대상자는 A, B, C, D, E, F. 대상자의 인적정보, 제시할 수 있는 조건, 미사용 연차 등 조사해주세요.'

'B, C는 장기근속했고 맡은 업무 이상으로 퍼포먼스를 보일 수 없는 직무이고, 현재 업무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고 생각된다면 연봉을 조정해서 계약하면 어떨까요?'

'D는 중책의 업무를 맡고 있고 당장 인력이 빠지면 대응할 사람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그 이상의 업무성과, 개선 여부를 기대하길 원한다면 1년 정도 계도기간을 두고 개선방향을 알려주고, 따라오지 못한다면 저 성과자로 분류해서 다음 조치를 취하시는 쪽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정작 일 안 하고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장기근속자 처우를 이렇게 한다면… 생략'


고개를 끄덕인다. 바뀌는 건 없다.



'내가 말할 게. A 불러주세요. B, C, E, F… '

'대상자들한테 이야기했고, 주말 동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D는 상반기내로 다시 이야기할 겁니다.'





'주말 동안 생각해보고 왔을 테니까 이후로는 면담 일정 잡고 진행하고 협의사항 정리해서 주세요.'

'사장님 하고 이야기해볼게.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A 님 잠시만 이야기하실까요.'
'본부장님하고 이야기 나눴다고 들었는데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몇 가지 있는데… 생략…'
'하… 어떻게 해요. 정작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장기근속하신 분들 대우를 이렇게 하네요.'

'어쩌겠어. 중간에서 힘든 일하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이러이러해서… 생략…'
'몇 가지 조건 중에 이건 이런 식으로 해줄 순 없을 까?'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친절한 인사팀은 처음이야.'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 게 안타깝다. 최대한 포장해서 보고한다.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소문이 퍼졌다. 그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 불난 집 구경하는 것 마냥 여러 사람이 묻는다.

웃으며 대하는 게 힘들어진다.



몇 번의 조율 과정 후 사직원을 받는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고생하셨습니다. 잘 가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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