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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Oct 02. 2024

빨래

Porto/Lisbon, Portugal

포르투갈. 포르투(Porto), 포르투의 구시가 리베이라(Ribeira).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리스본의 구시가 알파마(Alfama).


처음 시가지가 형성될 무렵에 산 중턱의 허리를 톡 잘라 도시를 만들기라도 한 걸까.

이 두 곳은 경사진 비탈길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래서 늘 누군가는 올라가고, 또 누군가는 내려간다.


물론 그 어느 즈음에서는 의자를 놓고 낮 시간을 즐기는 할아버지들이 눈에 종종 띄기는 하지만 말이다.     

왠지 나는 이곳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 사이사이를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흘러버리는 정들을 주체하기란 쉽지 않았다.


새 단장을 전혀 하지 않은 듯한 폭삭은 건물들이 몸소 보여주는 정직함,

그 건물들 하나하나마다 약간은 촌스러울 수 있는 아쥴레주(Azulejo)들의 ‘노장은 죽지 않았다’ 향연,

그 특유의 떳떳함에서 풍겨 나는 멋스러움.


그리고 발코니마다 즐비하게 널려있는 빨래의 위용.


포르투갈의 구시가지들은 더 이상 대성당이나 분수대, 종탑들이 유명해서 걷는 마을이 아니었다.


이곳들은 왠지 언제 가도 맞이해 줄 것 만 같은 시골집 할머니에게 패인 아름다운 주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 당당함이, 오히려 멀찍한 거리감과 낯섦에 당황할 법도 한 이방인에게 냉큼 다가와 손을 내미는 친밀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뛰어놀면 내 안의 사라진 동심이나 감상마저 끌어올려줄 것 같은 어릴 적 할머니 품과 같은 포근함이 만져졌다.     


그래서일까. 이곳들은 단지 거닐기만 해도 좋았고,

그냥 하나씩 튀어나와 있는 뭉툭한 계단에 앉아 잠시 고개를 옮기는 것만도 좋았다.


구시가지들의 약간은 후미진 골목들을 걷다 보면 지하창고 같은 서너 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 술병들을 쌓아놓고, 과일들을 쌓아놓고, 조금의 주전부리 간식거리들을 진열해 놓고, 일에 지친 마을주민들에게 언제든 쉬어 갈 수 있도록 채비를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몇십 년은 족히 넘었을 연륜의 대장장이가 작업에 몰두해 있기도 했으며, 아주 허름한 모양새를 하고 이가 맞지 않아 삐거덕거리는 문틈 안으로 보이는 세상엔 켜켜이 쌓여있는 구두 굽들과 씨름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골목들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눈길이 간다. 그리고 그 위에 조금씩 시선을 얹어두게 된다.


칠이 해진 벽들과 타일사이에서, 다소 볼품없는 번호로 번지수를 알리는 대문 옆 담장에서,


창문 밖 무심한 듯 걸어놓은 빨강과 초록이 섞인 그 나라 국기에서, 그 앞에 놓인 조금 한 화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을 지키는 주인들의 마음에까지...


왠지 투박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온정이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아 자꾸만 마음을 조금씩 나누어주게 된다.               


그중에서도 난 유독 빨래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빨래가 널려있는 것을 보는 게 좋았다고 해야 맞겠다.


빨래를 보고 있으면 왠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만 같고, 널려있는 옷가지의 종류와 형태, 색깔을 보면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성향까지도 묻어나는 것 같으며,


그리고 돌고 도는 인생이지만 그래서 오늘도 반복되는 삶의 일상에 불과하지만, 무엇인가 오늘도 내일도... 이 순간도 이렇게 사람이 숨을 쉬고, 때로는 똑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조차도, 그것들을 이행해 가는 것조차도, 노력이 깃들어있지 않은 곳은 어느 하나 없다는 것.


그렇게 이 세상에 혹여 티 안 나고 묻히는 자그마한 노력들에 대해 마치 대변이라도 하는 듯 스리슬쩍 몸을 끄집어 내 세상에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나 여기 있다고, 또 여기에 이렇게 있지만... 어제와는 조금 더 달라졌다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또한 널려있는 옷가지 자신도, 그것을 한 어느 누군가의 기분이나 행위마저도 뭔지 모르게 씩씩해 보이고, 또 늠름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 걸 보고 있으면 무언가 헛헛한 세상에 조금의 달램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무언가 동질감도 느껴지는 것 같다.                                                                                                                                                      



빨래. 빨래. 빨래.

괜스레 빨래의 과정을 떠올려본다.


내용물을 꺼내고, 작은 이물질이 들어갈 염려가 있으니 바지주머니들을 바깥으로 뒤집어 내놓는다.

물에 담그고, 적당히 적신 그들에 비누칠을 한다. 문지르고, 헹구고, 문지르고 헹군다.

그리고 남은 얼룩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본 후, 깨끗한 물에 마무리 세척을 한다.


그리고 있는 힘껏 짠다. 탈탈 털어 넌다.


그 안에 배인 축축함을 충분히 날려주고 남을 법한 따스한 햇살과 어디선가 일렁이고 일렁이는 바람결에 나를 맡겨도 좋을 날.


그들이 있다.      


내줄 것 내주고, 인정할 것 인정하고, 맡길 때는 맡기어 함께 흘러간다.


남아있던 얼룩 모두 지워내니 어딘지 무겁기만 한 몸, 알싸한 마음...


이제는 세상 앞에 건조될 차례다.           


그래. 이제 진짜 알짜배기만 남았다.

가만히 서서 그들을 본다. 빨래를 본다.





<빨래와 나>에 대하여.

포르투갈, 포르투와 리스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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