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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Santiago de Compostela, Spain

by 난나

함께.


함께'라는 말은 언제나 좋지.

무엇인가 비어있기보다는 채워져 있는 기분이고,

무엇인가 쓸쓸하기보다는 따뜻한 기분이고,

무엇인가 막연하기보다는 힘이 나는 기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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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어.

그래서인지, 길바닥에 부딪히는 내 신발 끝에서도,

부러질 듯한 우산살로 지탱하는 한계 밖

내 어깨 끝에서도 추적이는 소리가 들렸더랬지.


그런데 왠지 나는 참 설레었어.

마치 보물 상자 열기 전의 마음이랄까.


누군가는 유난이고,

누군가는 이런 내가 이해 안 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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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걸은 것도 아니고,

생장 피에 드 포르(Saint-Jean-Pied_de-Port)

부터 그곳까지 800여 km를 차로 와놓고

무슨 감흥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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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난 마드리드고, 톨레도고, 세고비아고,

중부지방을 외면하면서 북쪽 끝으로만 차를 타고...

이곳까지 달려갔던 거...


사실은 오로지 내 오랜 마음과 로망이 닿아있던

바로 이 길 때문이었어.


언젠가 내 삶의 한 지점에서 몹시도 힘들었을 때.

많은 말을 가져다 내 맘을 얼러주었던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거리낌 없이 단언하던 길이

바로 이 Camino de Santiago이었고,


어느 날엔가 한 다큐를 정말 터질 듯한 가슴 안고

숨죽이며 보았던 이야기가

바로 이 여정 위의 사람들 이야기였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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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늘 이 고단하고, 지루한 길을 잊지 않았어.


그리고 종종 그 길의 시작, 중간, 끝을 나 또한...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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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을 꼬박 운전해 바로 그 종착지.

세계 기독교 3대 성지중 하나라는 이 성당을 향해

결국 다다를 수 있게 된 거야.


바로 오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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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단 한 계단 성당을 향하는 교인들 사이로

걸어 올라가 이끼가 잔뜩 껴,

기나긴 세월과 전통을 몸소 드러내 주는 성당을

마침내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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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배당에 들어가서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들어찬

많은 성도들 사이에서 한 동안 시간을 지체한 후

다시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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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만치 어느 여자 둘이서

그 앞을 걸어가더라.


비가 와서 우비를 둘러 덮고,

편한 복장을 한 그녀들.


누가 봐도 순례자의 모양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대성당 정면에 멈춰 서서는

있는 힘껏 둘이 부둥켜안고,

있는 양껏 환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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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을 먼발치서 바라보는 데 그만....

난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난 그 순간 정확히 무엇을 본 걸까.

그리고 난 무엇을 느낀 걸까.



저 둘이 원래부터 친구였건,

길 위에서 만난 사이였건, 그건 중요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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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나선 발걸음에 맞이한 이른 새벽.

잎사귀에 또로록 거리는 물방울 소리,

아침이 열리는 세상의 소리,

그런 것들을 벗 삼아 고독을 감내하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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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 부은 발에 고통이 찾아든 오후 무렵-

너 나 할 거 없이 길 위에서,

그저 지그시 서로에게 웃어주며,

약을 나눠주다 말을 트게 된 사이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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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건-

그 모든 걸...

그 둘은 결국 다 겪어냈고,


내가 걸은 그 길에...

너도 분명 있었다는 거,

서 있었다는 거.


그거 아닐까.



너도

나도


우리-

함께.


<함께>라는 의미에 대하여.

스페인 Camino de Santiago 그 여정 끝에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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