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Oct 04. 2024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Make your choice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하는 작은 고민부터,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 어떤 과에 지원할지, 대학원을 갈까 취직을 할까 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할까 말까와 같은 조금 더 큰 고민들까지, 많은 선택의 순간이 우리 앞에 놓인다.


먼저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주변인들의 조언을 구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일반고로 전학을 고민할 때에도 주변 부모님, 선생님들의 의견을 구했고, 대학원을 진학할 때 국내 석사를 갈지 바로 다이렉트 박사를 준비할지, 수학에서 수학교육으로 전공을 바꿀지 말지, 그리 길지 않았던 내 인생에서의 굵직한 순간들에도 늘 주변의 멘토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실, 곰곰이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내 마음속에 원하는 방향이 있었고,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난 적이 많은데도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오롯이 믿지 못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눈치를 보았다. 물론 그렇게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 조언 속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쯤 깨닫고 그 뒤로 마음에 깊게 새기는 말이 하나 있다.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한다.


고등학교 때 나가고 싶었던 영어로 하는 물리 팀 토론 대회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꽤 많이 반대를 하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니 '하면 안 되나?' 싶었는데, 그때 처음 '아니, 그래도 안 하면 후회할 거 같다. 최악의 상황에 재수하는 거 아닌가? 재수하더라도 나는 이걸 할래.'라는 마음을 먹고 내 결정을 밀고 나갔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그 선택을 마음에 안 들어하셔서 나중에 수습하느라 좀 고생을 하기도 했고, 결국 나는 재수를 하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뒤로 주변인의 조언은 그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바탕으로 내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니 감사하게 받되, 선택은 내가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생의 큰 결정일 수록 더더욱. 오늘의 점심 메뉴를 교수님이 결정한다고, 친구가 결정한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책임은 살이 더 찐 나 정도 아닐까? 하지만 진로 결정, 대학원 진학 문제와 같은 일은 다르다.


‘어떠어떠한 교수가 그러더라, 유명 인플루언서가 이리해라’라는 말을 듣고 선택을 했다가 그 선택의 결과가 나쁠 때에 그 사람을 원망할 건가?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 수습은 결국 내가 해야 하고, 결과도 내 인생에 남을 텐데.


주변의 조언은 내가 놓치는 부분을 집어줄 수 있으니 소중하지만,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까지 온전히 기꺼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을 한다. 물론 선택의 결과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나오기도 해서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 도하지만 '이건 내 선택이지'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 결과도 수용하고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나는 늘 늘 '완벽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정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답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지혜를 구했다. 하나의 경우의 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여러 명한테 의견을 물어보았다. 내가 한쪽으로 기울면 내 선택에 반대할 것 같은 사람을 생각해서 그 사람의 의견을 물어봤다.


최근에 또 나름대로는 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결정이 있었다. 지도교수님과 오랜만에 캐치업을 할 겸 통화를 하다 겸사겸사 물어봤다. 그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

"there's no right decision. There is only a better one.”

선택의 문제는 보통 정답보다는 그냥 더 나은 선택지와 덜 나은 선택지가 있을 뿐이며, 그것도 그냥 우리가 지금 주어진 현실을 바탕으로 판단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혹시 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선택지가 좋은 선택지가 아닌 것이 아니며,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 선택한 그 더 선택지조차 장단점이 있지 않냐며. 그러면서 교수님이 졸업논문을 쓸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Think about when you are choosing for a framework for your research. There are many options but there is no single right framework.
You are just making a choice. Life is similar."
연구를 할 때 프레임웍을 정할 때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정답인 딱 하나의 선택지는 없다. 그저 너는 선택을 할 뿐인 거야. 그리고 삶도 비슷해.


아주 비유가 찰떡같았다. 거기에 교수님이 덧붙이신 말이 있다.


"And many people think their choice is irreversible.
But it's actually not."


교수님이 내 마음속을 엿본 것처럼 말하셨다. 내가 한 번에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 선택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많은 경우에 우리의 선택은 돌이킬 수 있다. 혹시 내가 하는 선택이 나중에 보니 덜 좋은 선택이었더라도, 정말 별로면 돌이키면 된다. 시간이 좀 들겠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을 테니. 만약 돌이킬 수 없다면, 그때는 또 그때의 선택지가 있으리라.




이러한 나의 생각들을 최근에 한 번 더 되짚게 해 준 영화가 "Everything all at once"였다. 우리가 문득 생각하는 '내가 그때 B 대신에 A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모든 경우의 수가 수만 개의 다른 유니버스로 이루어지는 그런 멀티유니버스를 다루는 영화다. 스포를 할 수는 없으니 이야기를 자세히 풀기는 어렵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한 모든 선택들의 결과가 지금의 나고, 내가 그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쯤 보는 것도 추천드린다. 여운이 좀 남는 영화다.

(초반에는 좀 지루해서 졸았고, 약간의 B급 감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왜 상을 타게 되었는지는 보면 이해가 된다.)



이전 08화 울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