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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Oct 18. 2024

조언과 피드백을 대하는 자세

결정권과 존중에 대한 생각

지도교수님한테 피드백을 받을 때, 대면으로도 늘 해주셨던 말이 있다.

These are just my comments.
Feel free to take what you need.

덧붙여서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거나 필요 없는 피드백은 무시하라고 하셨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그 걸 다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보통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피드백을 받는 대상이 결과물을 심사할 사람인 경우가 많아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만든 것들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연구 기준으로 생각해 봐도 분야에 따라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 연구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가장 연구 목적도, 데이터도, 결과도 잘 안다. 지도교수라 하더라도, 나보다는 덜 잘 아는 사람이다. 경험과 나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줄 조언들을 주시지만 결국 내 연구는 내가 책임지는 것인 만큼 결정권은 내게 있다는 것을 지도교수님은 내게 가르쳐주셨다.


이건 다른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부족함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그 조언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그만큼의 확신과 돌아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도 해야 한다.


안다. 이런 태도로 밀고 나가기 쉽지 않은 상사와 지도교수들이 많다는 것.


피드백과 조언을 주는 것을 본인의 권위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제자가 잘못될까 봐 당신이 생각하기에 “틀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따끔하게 혼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후의 일은 선택한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지난 글에 쓴 것처럼 “틀린”결정이라기보다는 다른 결정이고, 차선의 결정일 수는 있다.)


누군가 결정을 했다면 그 결정을 지지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진짜 존중하는 것이고, 그러한 자세로부터 본인의 권위를 쌓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정권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일화가 있다.


나는 교수님들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실 교수님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부탁을 해서 시간을 빼앗는 느낌이 드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부탁을 해도 될까?’는 고민을 정말 수십 번 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포기하기도 하고 몇 번은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도 비슷한 날이었다. 지도교수님한테는 그래도 부탁을 하는 편이었는데, 지도교수님이 안 좋은 일이 있으셨다. 지도교수님 와이프랑도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금 내가 부탁을 해도 될지 말지 고민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Why are you making the decision for him? He is an adult. If his capacity allows him to do so, then he will. If not, he will say no. If you make the decision for him, then it is like that you are not respecting him.
왜 그 결정을 네가 하고 있어? 그 사람 성인이야. 지금 할 여력이 되면 해주겠다 할 거고 아니면 거절하겠지. 네가 그 결정을 한다면 그건 네가 그 사람이 그걸 판단할 능력이 있다고 존중하지 않는 거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내가 ‘배려’라는 이름으로 하던 고민이 사실은 그 사람의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부정도 하다가 지금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상대방이 결정할 것을 내가 대신하지 말자고. 그건 월권이구나.


하지만 그렇게 가끔 월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권리와 능력을 내려놓고, 학생들이나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눈치 봐서 알아서 결정해 주길 원한다. 아마도 책임지기 싫은 마음에 혹은 거절하기 싫은 마음에 그러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상대방이 억지로, 거절하기 싫어서 수락하는 상황이 싫어서 부탁을 고민했던 거처럼.


그렇게 한 번 버럭 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뒤로는 ‘아 저 사람은 자기의 권리를 내게 내놓는 사람이구나. 불쌍한 사람이네.’하고 생각하고 맞춰주려 한다. (피곤하다.)


이게 문화적인 차이일수도 있고, 개인적인 성향 차이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결정은 개인의 권리라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그리고 그 결정권을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결정의 주체에 관한 생각과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한 번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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