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대하는 자세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정말 많이 답답했다.
해야 하는 공부가 많아서 힘들기도 하고, 입을 꾹 닫고 있는 나한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런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스트레스가 쌓여, 누군가 툭 치면 또르르 하고 눈물이 흐를 정도가 됐다.
처음 지도교수님 Shiv 앞에서 눈물이 났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눈물을 멈추려고 하면서 나는 계속 "I am so sorry"라고 말했다.
교수님은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괜찮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충분히 울어.
라고 말하며 책상을 뒤적거리며 휴지를 내어주셨다.
‘정말 괜찮은가?
얼른 눈물 그쳐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멈춰 ‘
나는 언제부터 눈물을 보이는 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눈물 뚝!”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가장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는 고등학교 수학과학 학원선생님과의 대화다. 내가 참 많이 따르던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이 ‘나는 여자애들 눈물보이는 거 진짜 질색이야.’라고 하신 순간이 15년도 더 지난 지금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 선생님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선생님도 그때는 어렸었으니 그런 말을 하셨을 수도 있지만, 저 말이 우리 사회에서 “눈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여성스러운 것“이며 연약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선생님과의 대화가 더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는 게 정말 창피한 일일까?
우리는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할 줄 아는 게 우는 거다. 아기들은 울음을 통해 자신이 생존에 무엇이 필요함을 상대방에게 알린다. 그만큼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다.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눈물은 나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의 스트레스와 감정을 안에 쌓아놓는 것보다는 눈물의 형태로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누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면 병난다. 홧병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가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실제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고, 진통제의 효과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면역력도 올려준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장점이 있는데, 눈물이 어쩌다 약함의 상징이 된 걸까?
나의 한국 경험으로 생각해보자면 눈물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가 ’징징거리는 거‘라서, 혹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서, 일하는 데에 방해돼서 이런 이유들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엔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주기 싫었거나 혹은 받아줄 여력이나 없었거나, 공감을 할 줄 모르거나 이런 이유들 중에 하나의 경우일 확률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그만큼 바쁘게 성장을 향해 달려온 사회니까 상대방의 감정을 느긋하게 받아줄 시간이 없었을지도 혹은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늘 누군가와 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감정에 시간 낭비를 한다고 생각했을 거 같기도 하다.
지도교수님 하고 그렇게 눈물을 튼(?) 이후로 나는 한 학기에 한 번꼴로 수도꼭지가 고장이 난 마냥 울었다.
한 번은 내가 벌써 교수님 앞에서 운 게 세 번째라고 말하면서 울었더니, 지도교수님이 그걸 왜 세고 있냐고 정말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뒤로는 세지
않았지만, 꾸준히, 꽤 많이 울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영어 관련해서 학생들한테 부정적인 피드백을 느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디펜스를 며칠 앞두고 처음 리젝을 받았을 때.
교수님 앞에서 울고 나면 내 감정이 좀 해소가 되고 진정이 됐다. (물론 교수님의 이런저런 조언들 덕도 있었지만.)
대학원 내내 주변 교수님들이 나의 감정을, 눈물을 존중해 주신다고 느꼈다. 울면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 (특히 외국어면 더더욱) 가능하면 울지 않으려고 하지만 내가 힘들었던 경험과 많이 닿아있는 졸업논문 관련 미팅들에선 참고 참아도 눈물이 나왔다.
운이 좋게도, 지도교수님 부부는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그 연구를 하는 나를 대견하게 자랑스럽다고 해주셨다. 또 다른 교수님 Jack은
네가 너의 감정을 내 보일 정도로
나를 신뢰하고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영광이야
라고 말해주셨다. 이건 내게 관점의 전환이었다.
내가 지금 안전하다고 느끼는구나.
그래서 눈물도 흘릴 수 있는 거구나.
내 감정이 존중받고 이해받는다고 느꼈다. 내가 아주 복이 많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먼서도 그렇게 눈물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더 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눈물에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장점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십여년 전 화제가 되었던 그 말처럼 “울어도 돼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눈물을 보인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릴 만큼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이고 나름대로의 감정 해소를 하는 중이라고, 그리고 그만큼 여러분들을 믿고 안전하게 생각한다고 바라보면 어떨까.
그 눈물이 내 눈에서 흐르고 있다면, 너무 창피 해하지 말자. 나는 나름대로 감정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이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지금의 그 감정이 좀 옅어질 수 있다. 참으면, 독이 되니 흘려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