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사과정 살아남기
앞에 썼던 것처럼, 2n 년을 해외 한 번 안 나가고 한국에서 살았던 내게 영어는 당연히 어려웠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너무 영어를 못한다고 몰아붙이는 자세보다는 좀 더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대한 생각도 변함이 없다.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더 소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영어는 더 안 나오고, 상대방도 더 알아듣기 어려울 거다. 누군가 모든 것은 기세라고 했던가? 언어도 마찬가지다. 당당한 자세로 뱉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곁에서 보면 그런 사람들이 영어가 빨리 는다.
그러니 논문을 주야장천 읽어야 하는 전공으로 바꿨을 때, 당연히 너무 힘들었다. 앞에서 한 말과 다르게, 나는 정말 많이 나 스스로를 미워했고 부족하다고 한심해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 앞에서 한숨도 많이 쉬었다.
”나는 원어민들하고 영어가 경쟁이 안될 텐데.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 “
그때 교수님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해준 말들이 있다.
너는 Academic English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아카데믹 영어는 패턴이 있고, 그건 시간이 지나면 익히게 될 거다.
교수님이 앞 뒤로 여러 말을 덧붙였지만, 내 기억에 남은 말은 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최소한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말이었다. 박사과정 유학생인 내가 해외에 온 이유는 “연구자로서” 배우고, 성장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계에서 사용하는 영어다. 다행히도 학계에서 쓰는 영어들은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스피킹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본인의 언어습관이 나와서 딱 정형화가 된 것은 아니지만, 라이팅의 경우에는 혹자들은 템플렛이 있다고 할 정도로 쓰는 표현들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어휘들과 표현들, 관용구를 계속 접하게 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게 되어있다.
나는 표현들을 익히기 위해서 영어 논문을 소리 내서 읽었다. 소리 내서 읽으면 사실 느리다. 그냥 읽어도 느린데, 소리 내서 읽으면 입도 익숙하지 않으니 시간이 더 든다. 하지만 그렇게 읽으면서 내 입 안 근육들도 깨우고, 내가 그러한 표현들을 소리 내는 데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낸 소리들을 다시 들으며 듣는 연습도 무의식 중에 된다. 그리고 물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하는 속도로 영어 표현들이 들리고 이해를 하는 연습도 된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걸 그때그때 이해하는 것을 연습해야 하니까. 현실은 토플처럼 또박또박 이야기해주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어느 정도 패턴이 보인다. 그러한 패턴이 눈에 익기 전까지는 여러 논문들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표절을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여러 논문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어떻게 표현해 두었는지 확인해 나가면서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나의 라이팅 스타일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티칭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이름을 읽는 것조차 낯설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내가 영어에 워낙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Nathan”이라는 이름을 보고 ”나단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네이쓴“이라고 읽는 거였다. 처음 몇 번은 이런 실수가 창피했다. 하지만 이내, “너네도 내 이름 못 읽잖아? 이게 뭐가 부끄러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아무리 Jihye라고 읽어도 “지하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래서 이제는 학기 초에 그냥 말한다. ”내가 지금부터 이름 부를 건데, 틀릴 수도 있어. 그러면 알려줘. “ 그리고 혹시 어떻게 부를지 모르겠을 때는 ”이 이름 어떻게 읽는 거야? “하고 메모를 한다.
학생들 이름을 읽는 것뿐 아니라, 티칭에서도 쓰는 표현들이 점점 입에 익숙해지게 된다. 초반에 학생들이 튜터링 센터에서 “FOIL 해?”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는 foil은 알루미늄 쿠킹포일뿐이라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분배법칙을 쓰냐는 표현이었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낯설 수밖에 없지만 점점 익숙해지게 된다. 이러한 내용적인 문제 외에도 티칭 방법들 자체도 점점 익숙해지고 입에 익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도 내가 본인들을 가르치는 데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그 분야를 본인들보다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잘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렇게 Academic English가 익숙해진다면 그다음에 눈을 돌려 사회 문화적인 표현에도, 생활적인 표현에도 더 시간을 쏟으면 된다. 사실, 학계 영어를 배우면서 이러한 부분의 영어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오게 되는 것 같고, 그 이상은 아마 노력의 문제일 것 같다.
교수님은 학계 영어에만 처음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해 준 반면, 가장 친한 친구 Valentin은 기술의 발전을 믿어보라고 했다. 이 친구도 같이 유학생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은 경험이 많고 미국에서도 살아보았고 학부도 영국에서 나와서 나랑은 좀 다른 케이스다. SOP도 그렇고 초반에 몇몇 document를 이 친구한테 첨삭을 받았었다. 그러면 정말 마크업이 너무너무 많았다. 내가 민망할 정도로.
“와, 나 진짜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입밖으로도 내었는지, 그 친구가 내용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자잘한 문법적인 이슈가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초창기 서비스였던 Grammarly를 이야기를 했다.
Grammarly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빠르게 인공지능이 발전할 거야.
그러면 라이팅은 점점 더 아이디어와 논리력 싸움이 될 뿐이고,
이런 테크니컬 한 부분은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게 벌써 6-7년쯤 된 이야기일 거다. 그 사이에 인공지능은 정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의 옆에는 ChatGPT로부터 시작해, 클로드, Deepl 등 다양한 생성형 AI가 있다. 앞으로의 발전은 더 눈부실 것이고, 정말로 동시 통번역이 되는 이어폰도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은?)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헛소리를 하는지는 알아야 하고 잘못된 단어를 가져다가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여기서의 포인트는 결국 글은 아이디어 싸움과 흐름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글을 쓸 것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어느 이론과 연결해서 풀어나갈 것인가에 관한 것들 혹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매끄러운 흐름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인지. 후자는 아직은 인공지능을 써봐도 긴 글의 흐름은 잘 잡지 못하는 것 같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아마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내 대신해 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부분은 나는 영어 한국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과 글쓰기 연습에 관한 부분인 것 같다. 이러한 부분은 연습을 해야겠지만, 만약 고민이 단순한 통번역 쪽이라면 그 문제는 이제 해결이 좀 더 간단해진 것 같다.
영어가 외국어였던 또 다른 교수님이 내가 영어가 고민된다고 했을 때 해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앞의 두 메시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의 종점이기도 하다. 반복되어 나오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는 연구자
라는 점이다. 연구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Academic English고, 그러한 것을 도와줄 툴은 개발되고 있다. 수단인 언어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혹은 시간이 지나서 우리가 편해지게 된다고 했을 때, 우리의 알맹이는 “연구 퀄리티”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걸 안다.
몇 년 전에 한 학회에서 Plenary 발표를 하신 한 교수님이 대본을 써오셔서 읽었다. 분명 시작할 때에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톡을 하는 것이 조금 긴장되니, 대본을 읽어가며 발표를 하겠다. 이해해 달라.”라고 말했는데도 나는 좀 의문이 있었다. ‘이렇게 큰 자리에 와서 톡을 하는 데에 대본을 읽는다고?’ 그리고 톡이 끝나고 Valentin 하고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말했다. 그랬을 때 발렌틴이 “뭐 어때? 맨 처음에 설명하셨잖아. 그분이 영어가 제2의 언어라서 그렇다고.”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결국 다 그 톡을 듣지 않았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 교수님은 우리 분야에서 충분히 명성을 쌓으신 분이라 Plenary Talk을 맡게 되신 것이고, 사람들은 그래서 그 사람의 톡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한 번 더 몸으로 느끼면서 깨달았다.
내 연구가 중요하고, 본인이 관심이 있다면 내가 혹시 영어가 서툴더라도 와서 물어보고 나의 글을 읽고 이해하려고 할 거다. 하지만 내가 영어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내 연구에 알맹이가 없다면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 연구가 중요하다.
물론, 언어 중요하다. 영어를 잘하면 논문을 읽고 새로운 이론을 접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 거다. 그리고 네트워킹도 더 쉽고, 나를 어필하기도 쉽다. 그런 것들이 내 눈에도 보이니까 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을 겪어보면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잘할 수는 없다.
나의 연구 기본기를 잘 다지고, 연구의 내실을 키우며,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영어실력을 키우기.
이게 나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사람마다 다른 우선순위를 갖게 될 거다. 가지고 있는 장점이 모두 다르니까. 나는 소극적이었고,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나 혼자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먼저 찾았다. 어쩌면 외향적인 친구들은 네트워킹을 먼저 하고 소셜활동을 통해 영어 실력을 먼저 쑥 올릴 수도 있을 거다. 각자의 장점을 바탕으로 내가 유학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혹은 미국/해외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면 각자의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