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e harsh on yourself
미국 유학을 결정할 때 제일 신경 쓰이는 것 두 가지는 아마도 하나 경제적 여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영어가 아닐까 싶다. 경제적인 상황은 그나마 Full Funding이라고 하는 경제적 지원을 받아 해결되는 경우가 있지만, 영어는 가기 전에도 고민이고 가서도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여전히 완전히 영어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도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몇몇 개의 깨달음 혹은 교훈을 얻었다. 그 이야기들을 이번 글과 다음 글에 나누어 써보고자 한다.
나는 학부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해외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었고, 수능에서도 영어가 제일 싫었다. 고등학교에서 주말에 나와서 TEPS 시험 보라고 하면 그 성적이 처참했다. 단어를 외우는 것도 어려웠고, 문법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도 어려웠다. 수학도 공식을 외워서 활용하는 거고, 영어도 문법과 공식들을 활용하는 건데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팀을 꾸려 영어로 물리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대회가 있었다. 발표도 당연히 영어로 했어야 했다. 나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어학원도 보내줬었던 거 같은데, 왜 자꾸 모든 말이 "I am..."으로만 시작되는지. 심지어 be동사가 아닌 다른 동사가 와야 하는 데도 "I'm...."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대학교 와서 영어실력? 수학공부만 주야장천 했는데, 나아질 리가 없었다. 여하튼 그나마 리딩 리스닝은 어떻게 해도, 스피킹은 정말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래서 스피킹 미니멈이 있는 토플을 한 번에 끝내지 못했고, GRE도 좀 고생을 했고 성적이 쉽게 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토플과 GRE는 어찌어찌 시험 준비하던 가닥으로 봤다. 그런데, 실전 영어는 다른 이야기였다.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 제일 당황스러웠던 이야기를 하나 풀자면 (그리고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이란). 누군가 내게 "How are you?"라고 물었다. 내 입에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I am fine. Thank you, and you?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Fine"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보통 "Good" 이 대답이 흔한 것을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알게 됐다.
여하튼, 이렇게 간단한 안부인사조차 낯설었으니 미국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연히 미국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였고, 시간이 꽤 흘러서도 영어로 토론을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며 발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토론이 힘들었는데, 나는 토론 중에 다른 사람이 하는 영어를 듣고 그걸 번역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뇌 용량이 다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내 짧은 영어가 답답하고 내가 모자라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내가 처음 수학교육과로 박사 전공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영어교육 박사과정을 하던 와이프를 둔 형부가
언니 영어 때문에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혼자 정말 많이 울었대. 잘 생각해 봐.
라고 해주었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토론에 끼지 못하면 사람들이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라고 생각할까 걱정하면서도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게 정말 속상하다 못해 서럽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런 고민들을 이야기했을 때, 친한 교수님 Jack이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You should be proud of yourself. I cannot imagine doing a PhD in my second language. It was even hard for me to do in my first language."
나는 네가 너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 나는 외국어로 박사과정을 한다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어. 내 모국어로 하는 것조차 힘들었어.
불행히도, 나는 이 말을 듣고도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다. 평생을 남들과 비교하며, 경쟁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저 영어를 못하는 게 내 약점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 저 말이 진심이었을까,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을까 ‘라고 괜한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냈다. 박사과정 동안 꽤 많은 과목을 가르쳤고, 그러다 보니 나 같은 international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 다른 international들의 이야기도 듣게 됐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보며, 추적 인터뷰를 통해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내가 나를 부족하다고만 바라보는 자세와 태도가 내가 나의 가치를 낮추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저자세가 건강하지 못한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과 덜 배운 사람들이 나를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가진 능력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귀하게 대해줄 수 있을까?
그 뒤로는 아래같이 생각하려고 하고, 예비 유학생 혹은 유학생들과 소통하게 되는 다양한 경로에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나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를 리소스로 이용해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
거기에 덧붙여서, 박사과정생 혹은 연구자들은
그 두 언어를 자원삼아 학문적인 확장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같은 경우는 사회과학을 연구하니까 나의 이런저런 아이덴티티가 직접적으로 나의 연구에 영향을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확장시켜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이 아니더라도 두 가지 언어를 통해서 여러분이 접할 수 있는 연구 풀도 늘어나고, 여러분이 한 언어로 된 연구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능력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쉽지 않다. 여전히 영어가 버벅대면 짜증이 난다. 그래도 나의 관점을 바꿔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나 스스로 내가 가진 능력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