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 하는 식사
본래의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해외에 오면 종종 동행을 구한다. 포르투에서도 몇 번 동행들과 함께 다녔던 기억이 있다.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찾아서 정말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로 밥만 먹기도하고, 그냥 노을을 기다리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마음이 맞는 자매와 같이 남은 하루를 같이 보내기도 했다.
(그 자매중 동생이랑은 그때 인스타 친구를 맺었는데, 그 뒤로 따로 대화는 안하지만 곧 결혼을 앞둔 것 같아, 남몰래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있다.)
그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들이 동행을 찾는 도시에 왔다. 내 일정을 다른 사람들하고 맞추는 것이 싫어 처음 며칠은 그냥 혼자 다녔다. 그랬더니 '정말 이렇게 빵만 먹다가 가려나' 싶어서 동행을 찾아보기로 했다. 비슷한 나이 대의 여자분들이 편할 것 같아 그 나이 대의 여자분들이 찾는 동행 글을 찾았다.
한 팀은 이미 식사 인원이 여섯 명이 되어 힘들 것 같다고하고, 다른 분의 오픈카톡방에는 여자 분 한 분과 남자 분 두 분이 계셨다. 하지만 나는 프렌치가 먹고 싶었는데, 여자 분은 프렌치는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따로 밥을 먹겠노라 했더니, 그 방에 계시는 분 한 분도 프렌치를 먹겠다 하셔서 "같이 드실래요?"라고 해서 그 분과 밥을 먹게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와,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약간 아득해졌다. 보내주신 사진을 토대로 위치를 추측해가면서 그 분을 찾았다. 꽤 앳되어 보였다. 보통 동행분들이 말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 분은 어쩐지 말이 적다. '내가 말이 적은 편이라, 말이 적은 동행은 여러모로 어색해지기가 쉬울텐데'라는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어쩌랴, 밥은 먹어야지.
동행은 자주 구하시는 편이냐, 어쩌다 이 시기에 여행을 하게 되었냐, 파리는 언제 오셨냐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군대를 막 전역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나온, 여행 17일차이지만 파리엔 어제 밤에야 도착한 학부 휴학생이다. 가려고 하는 식당의 오픈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 뤽상부르 공원 근처를 산책하다 가기로 했다.
이 친구가 군데 군데 눈길을 주는 것을 보니 조각상이 많고, 영화관이 보이면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차마 보이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예술 쪽 공부하는 친구인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스스로 전공이 미대라고 조소과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러고 보니 앞선 대화에서 첫 날 첫 일정으로 루브르를 갔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루브르는 어땠냐고 하니,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봤다고 했다.
눈물이라니.
나는 예술품을 보고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냐고 물으니, '니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도 8년전 어렴풋이 아주 짧게 다녀온 루브르지만 그 작품은 기억에 남는다. 니케를 보면서 느꼈던 불완전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날아오르는 것 같지만 루브르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 심미안과 관점이 부러웠다.
그 밖에도 예술을 대하는 본인의 자세가 뚜렷했다. 내용이 들어있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예술을 좋아하고, 그저 예쁘기만 한 작품들에는 흥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주 좋아하는 모네를, 그 친구는 예쁘기만 하고 어떤 의미 어떤 생각인지가 느껴지지 않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저 예쁜 걸 좋아하는 걸까. 아니, 나는 그 시간대에 느껴지는 다양한 색감이 좋다. 빛을 보고 그 인상을 남긴 작품이 좋다. 그리고 나는 추상적인 작품의 해석이 어렵다. 직관적으로 예쁜 작품이 나는 아직도 좋다. 누군가는 예술을 몰라서 그렇다고 그럴지 몰라도, 그것이 내 취향이니 어쩔 수 없다.
비록 나랑은 예술적 취향이 다르지만, 확실한 그의 신념이 부러웠다. 혼자서도 예술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가려던 식당은 이미 풀 부킹. 급한대로 다른 식당을 찾아서 가야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을 들어갔다.
음.. 오랜만에 먹어본 프렌치. 사실 10여년 전, 더 가난한 시절에 왔을 때는 파리의 물가가 너무 비싸 코스요리나 프렌치를 잘 도전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에서야 런치 메뉴는 가성비가 좋다는 걸 알게되어 '프렌치를 더 시도해볼 걸'이라는 아쉬움을 안고 떠났었다. 이렇게 다시 안왔었으면 아쉬워서 어쩔 뻔 했지!
그래서 이번이 나의 첫 에스까르고다. 저번엔 에스까르고가 가격에 비해 양이 안될 것 같아 시도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쩐지 낯선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결국 골뱅이나 고둥과 비슷한 존재들이 아닐까? 싶어 이번엔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최근에 흑백요리사를 보며 골뱅이로 에스까르고를 만들 생각을 한 걸 보며, '나랑 같은 생각이군!'이라고 뿌듯해했다.)
음.. 안타깝게도, 이 프렌치는 크게 맛집은 아니었나보다... 아니면 에스까르고를 엄청 섬세하게 맛있게 느낄 정도로 내가 미식가가 아니던가. 처음 먹어본 에스까르고는 약간의 흙맛과 버터의 맛이 있었다.
'골뱅이가 더 맛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가운데 저 메뉴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보니, 정말 임팩트가 없었나보다. 저렴한만큼 조금 질깃했던 스테이크까지 먹고도 살짝 부족했다. 사실 당연하다. 스타터, 메인, 디저트를 다 시켜서 먹는 코스로 양이 잡혀있었을텐데, 스타터 하나와 메인 두개로 한참 잘 먹을 20대 초반 남자분과의 식사였으니.
그래서 디저트도 시켰다. 피스타치오 타르트였다.
밥을 먹고는, 재즈바에 갔다.
아주 유명한 재즈바라고 했다.
그래서 사실 Caveau de la Huchette 여기가 라라랜드의 영감이 된 곳이라고 해서 다녀온건데, 어디가요? 클럽에 조금 더 가까운 곳 같았다. 그래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서 연주를 보면서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워낙 소란스러워서 사람 구경을 했다고 보면 된다. . 여기보다는 나중에 다녀온 Chez papa Jazz Club이 더 내 취향이었다.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나 와인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 라라랜드에 나오는 재즈바 스러웠다.
여튼, 다시 동행 이야기로 돌아와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내가 아끼고 아끼며 여행다녔던 그 때가 생각나서 그랬을까? (물론 지금도 아끼고 아껴서 다녀야하는 처지다.) 그 친구의 입장료는 대신 지불해줬다. 나 혼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곳이기도하고. 나야 원래 클럽을 한 번도 안가봤고, 그렇게 노는 편도 아니라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 친구도 그렇게 노는 편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가 발 까딱거리면서 음악만 듣고 있어서였는지.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 뭔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라,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재즈바에서 노트를 꺼내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그 능력이, 예술로 돈을 벌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다른 걸로도 돈을 벌면서라도 취미로 계속 하고 싶다는 그 열정과 신념을 가진 그가 부러웠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한 세션이 끝날 때까지 재즈바와 사람구경을 하다가 나왔다.
그러고는 아주 쿨하게 각자 갈 길을 갔다.
이름도 모르고, 학교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의 한 끼 식사.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내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 친구랑 이야기하고 나서, 그 다음 날 베르사유에 가서 보니 조각상들이 평소보다는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이 조각 하나하나에도, 다 작가들의 생각이 들어있겠지.' 베르사유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는 걸로 하고.
이렇게 내가 부러워하거나, 내게 배움을 주는 대화들이 좋다.
동행을 구한다고 다 잘 맞는 건 아니다. 가끔 나이로 훈계하려는 사람도 만나고, 그냥 술을 마시고 싶어서 술 마시려고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면 쇼핑에 관심이 많은 여자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행은 각자의 취향이니, 나와 취향이 다른 거 같은 때에는 빠르게 헤어진다. 안녕히계세요.
그러다 마음이 좀 잘 맞는 분들은 같이 산책을 하거나 노을을 보면서 조금 더 일정을 같이하기도한다. 그렇게 되면 일대일로 대화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 낯선 공간에서 잠깐 보고 말 사람이라 그런가? 스스로의 걱정을 더 터놓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고민을 안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양한 상황들을 접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도한다.
그래서 이 동행들을 만나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건, 나는 깊이가 있는 대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1:1 상황이 1 대 다수의 상황보다 편하다. 누군가의 반짝이는 열정을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것이 좋다.
그런 생각들을 말할 때 그 사람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좋다.
내가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에 감동이 오는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다.
대화로만 알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그런 배움들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