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생들이, 아니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말
“How are you?”
그저 안녕하냐는 질문 아닌 이 질문에 답이 어려운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교수님 책상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앉으며 우물쭈물 대답을 했다.
“그냥 그냥. “
“왜? 무슨 일이 있어?”
교수님이 이렇게 물어보는 날이면, 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교수님에게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그 맘 때쯤, 수학과 박사과정생에서 수학교육과 박사과정생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새로 적응 중이었다. 다행히 같은 학교로 과정을 옮겨서 어느 정도의 친숙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수학과에서는 Teaching Assistant (TA)를 12시간 정도의 일의 양으로 20시간의 펀딩을 제공했지만, 수학교육과에서는 비슷한 TA의 일이 10시간으로 카운트가 되고 Research Assistant (RA)를 10시간 따로 했어야 했다. 심지어, 전학기에는 조교로만 하던 과목을 내가 Instructor of record, 즉, 강의를 전담하게 됐는데 인정되는 시간의 양이 오히려 10시간으로 줄어든 거다.
새로 들어간 RA는 지도교수님이 PI로 있던 팀이었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던 연구 팀에 들어간 거라,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대학원생들도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는데, 나는 상황 파악하느라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미국에선 그러면 멍청하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인지, 그 시간이 꽤 곤욕스러웠다. 나도 의견을 내고 싶은데,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교수님들한테 ‘쟤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저 자리에 왜 앉아있는 거지?’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무서웠고 조바심이 났다. 그럼에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미리 수학교육과 박사과정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 과의 qualifying exam에 해당하는 소연구를 해야 하는 Research Practicum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 학기의 목표는 연구 주제를 잡아서 프로포절을 쓰는 것이었다. 그 수업을 2학년들과 같이 듣고 있었고, 동시에 질적연구방법론이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심지어 수학교육과 밖에서의 수업이라니. 특수교육학, 교육행정 등등 다양한 전공생들이 와서 듣는 수업이었다. 다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나는 ‘내가 여기에 있을만한 사람이 맞나?’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위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임파스터 신드롬 (Imposter syndrome)의 파도가 나를 덮어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울먹거리면서 풀어놓았던 거 같다. 그리고 교수님도 점점 어두워지던 나의 얼굴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결국 울음이 터진 나는 한참 동안 울었고, 교수님은 책상 서랍을 뒤적거려 어디선가 냅킨을 찾아내어 주셨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난 뒤, 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네가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이 뭐뭐가 있지?”
나는 생각하다가 “Teaching, Work for your grant (RA)…? “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이 내가 부르는 것들을 책상 뒤 칠판에 쓰면서 “그게 다야?”라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수업도 들어야지 “라고 하나를 덧붙였다. 교수님이 분필을 내려놓고 내 눈을 쳐다보았다. “Are you sure?”이라고 묻는 교수님에게 ‘내가 뭘 놓쳤지? 저게 다 인가?’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교수님이 물었다.
“What are you doing for yourself these days?”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냐고?) Um… getting treatment for my back pain..?”
교수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건 생존을 위한거고. 너를 위해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있냐구“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 지금 저 일들을 다 하느라 바빠죽겠는데, 수업을 위한 논문을 읽는 것도 바쁘고, 연구 프로포절을 위해 읽어야 하는 논문들도 너무 많은데. 내가 날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어디에 있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없다고 교수님에게 말했다. 교수님은 다시 분필을 들어 칠판에 “Personal Care”라고 쓰면서 말했다.
너 스스로를 케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RA, TA, 수업. 그래, 다 중요하지.
하지만 너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먼저야.
매일매일 너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사실 대학원 과정에서 쉽지 않겠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네가 좋아하는 것을 너를 위해서 해줘.
생각해 보면 그렇다. 대학원 생활도 결국 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계속할 수 있고, 대학원의 끝인 학위도 ‘내’가 없으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평균 5-6년이라는 박사과정 시간 동안, “나”를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마 누군가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를 잃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박사학위는 어디 장기 하나랑 교환하는 거다.”라고 할 정도로 박사과정 중에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박사님들을 돌아봐도, 학위과정 중에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암에 걸리는 경우도 힘들지 않게 봤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각자의 가치관이겠지만, 나는 “나”를 잃는 것보다 학위가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이어서 교수님이 말을 덧 붙였다.
“그다음으로는 뭐가 더 중요할 것 같아?”
‘뭘까, 교수님이 코디네이터로 있는 TA? 아니면 교수님 그랜트 RA?’ 이런 생각을 하며 아마도 굴러가는 눈동자와 함께 교수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의 공부, 너의 연구지. 그다음으로 수업하는 거, 그다음으로 그랜트에서 일하는 거. 나는 이 순서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Personal care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중요하고.”
“정말? 하지만, TA랑 RA는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많은 대학원생들이 잊는 것 같은데, 너 여기 왜 있어? 네가 있는 이유는 TA랑 RA를 하려고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그거 다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지. 하지만, 너는 여기에 네 공부를 하러 와있는 거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박사과정에서 보통 본인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들을 같이 하니까, 그 일에 치여서 자신의 공부와 연구를 미뤄놓기 쉬웠다. 티칭은 내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 내가 가르치는 30명의 아이들에게 영향이 간다는 핑계로, 지도교수님 연구는 여럿이 같이 진행하니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흘러간다. 그런데 그러면 “내 공부, 내 연구”는 누가 위해줄까? 공부와 연구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기서 내가 왜 대학원에 왔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꾸 다른 사람과 상황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그 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던 나의 방향을 ‘나’를 기준으로 바로잡아준 대화였다.
내가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