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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안 Jun 18. 2024

쌍둥이자리

형제

오늘도 부모님 가게가 있는 어시장에 가는 수현. 여름 방학을 맞아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남동생 민재를 뒤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민재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늦둥이 막냇동생이다. 늦게 태어난 남동생과 대학생인 수현, 두 형제를 뒷바라지하느라 수현과 민재 부모님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매일같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게를 지켜야 했다.


수현과 민재 부모님은 '박가네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생선 가게는 부산에서 30년이 넘은, 수현의 할아버지 때부터 쭉 이어져 온 가업이다. 수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이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고, 수현은 자연스럽게 초등학생 때부터 이 가게가 있는 부산 수산시장을 거의 집처럼 들락날락거렸다. 부모님 가게 양옆으로는 청과물 가게, 잔치국숫집이 있었는데, 정을 붙일 때즈음 없어지고, 금방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박가네 생선가게'가 오직 뚝심 있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현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아직 오후 12시이지만 부모님과 약속한 시간인 오후 1시까지는 촉박했다. 수현은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 가게 일을 돕고 있다. 아직은 2학년이라, 크게 하는 일도 없고, 마침 고향에 내려온 김에 부모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 벌이를 하고 있다. 아직은 서울보다는 고향이 편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고등학생 수현은 이 도시와는 이제 지긋지긋했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중고등학생 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네 친구들과도 완전히 멀어지고 싶었고, 보란 듯이 "멋진" 인서울 명문 대학을 가서 우리 가족을 무시하던 동네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수현은 열심히 공부했고, 간절했던 덕분인지 그토록 염원했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수현의 대학 합격 소식은 수현만큼 간절했던 어머니가 가장 기뻐했다. 학교 기숙사 가는 날, 수현은 단숨에 짐을 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를 타며 수현은 생각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잡고, 부모님이 더 이상 고된 생선 가게 일을 하지 않게 해 드려야지...'


그런데, 지금은 부산 해안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부모님 생선 가게로 향하는 수현이었다. 서울 대학 생활은 수현의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다들 똑똑하고 눈치 빠른 친구들이어서 마음 놓고 쉽사리 친해지기도 어려웠고, 학점에도 목숨 거는 친구들이 많아 성적 받기도 어려웠다. 원래 대학교 인간관계가 중, 고등 학창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서울의 대학생들은 썩 정감이 없었다. 가끔가다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가웠지만, 그마저도 섞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수현은 상처받은 1학기를 마치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서 치유받고 싶었다.


7월의 수산 시장은 겨울보다는 덜 붐볐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오후 1시, 뜨거운 오후이지만, 수산물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박가네 생선가게'는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친절한 서비스로 명성이 높았다. 이 가게에 들르는 손님은 기분이 좋지 않아도 좋게 해 드려 보내드리자는 아버지의 철학과 아버지의 유쾌한 성격 덕분에, 이 가게에는 항상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오늘은 도다리와 전갱이가 많이 팔렸단다. 수현은 입고 온 리넨 셔츠를 가게 옷걸이에 걸어두고 앞치마를 둘렀다. 늦었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수현은 가게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능숙하게 물고기를 잡고, 어머니를 도와 서빙을 했다. 회를 뜨는 건 아버지의 몫이었다. 회 뜨는 건 아버지 전문이었다.


수산 시장은 12시에 닫았다. 수현은 7시까지 가게를 지키다, 손님이 잠깐 빠져 밀린 수다를 떠는 어머니 아버지를 뒤로 자전거를 끌고 가게 문을 나섰다. 동생은 많이 컸지만, 아직 중학생이었고, 또래 친구들보다는 조금 말이 더뎠다. '조금'이라고 생각하는 게 수현의 마음에 편했다. '아직 크는 중이니까, ' 수현은 생각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동생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민재는 초등학생 때 ADHD 판정을 받았다. 이를 알게 된 어머니는 크게 놀라 이틀간 가게에 나가지 못했다. 민재가 초등학생 때, 수현은 고등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인 수현은 학업과 민재의 저녁밥을 챙겨주러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어머니는 동생의 병을 낫게 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혼신적인 노력 덕분에 동생의 병은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동생 또래에 비하면 말수도 없고, 말을 해도 어리바리, 산만한 느낌이 가득했다.


40분을 달려 집에 도착한 수현은 가스불을 켜고, 계란국을 끓였다. 고소한 냄새에 민재가 방문을 열고 형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 혀.. 형, 왔.. 어?" "그럼, 방학 숙제는?" 수현이 대답했다. 수현의 모습은 영락없는 주부였다. 수현은 어머니 역할을 동생이 10살 때부터 4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수현이 대학을 가고 난 후부터, 주부 역할은 당분간 쉴 수 있었다. "나는 바.. 방학 숙제... 하.. 긴 했는데, 같... 이 하는 게 있거든, 그.. 근데 치, 친.. 구.. 가 없어서, 그거 빼.. 고는 다.. 다했어." 민재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럼 같이 하자, 형이 같이 해 줄게." "저... 정말?" 민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혀.. 형 저.. 정말 고.. 고마워, 그... 그게 뭐냐면,," "기다려봐, 일단 저녁부터 먹고 해." 수현은 대답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계란국과 명란젓, 그리고 햇반 두 개. 단출한 저녁이었지만, 형제의 저녁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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