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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자 Oct 31. 2021

[그림책 여행지 13] 잘 가, 안녕

내용과 그림의 기법

글그림 김동수

보림출판사

2016


안녕하세요! 10월의 마지막 날, 열세 번째 그림책 여행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난 여행지에서는 그림책의 요소인 글과 그림이 어떻게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림책의 요소 중 그림을 중심으로 기법과 내용과 연결을 생각하며 여행지를 탐험하겠습니다. 오늘의 여행지는 김동수 작가의 <잘 가, 안녕>입니다.


표지에는 어스름한 물가에 리어카 한 대가 서있고, 그 위 하얀 꽃을 물고 있는 흰 오리가 있습니다. 푸른 어둠이 묻어있는 그림에 '잘 가, 안녕'이라는 제목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쓸쓸함이 묻어있습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오리의 얼굴을 보면 이 작별이 마냥 슬픈 작별은 아님이 느껴집니다. 꼼꼼한 색연필로 칠해진 그림 속 화자는 누구와의 이별한 것일까요?


특이하게도 이 그림책은 표지를 넘기자마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급작스럽게 시작되는 이야기만큼 내용도 충격적이죠. 강아지가 로드킬로 죽었습니다. 푸른색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은 해가 진 푸름을 잘 담아냈지만, 그만큼 인적이 드문 시각이라 강아지의 죽음이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죽음임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강아지 시체를 발견하고 리어카에 실어갑니다. 이제야 등장하는 <잘 가, 안녕>의 제목 페이지에, 앞선 내용이 영화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집니다. 


표지에 보였던 리어카는 주인공 할머니의 것이고, 그는 이 쓸쓸한 죽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회색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집에 살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나이 든 여성 주인공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결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음을 알게 합니다. 



집 내부에서부터 그림의 기법이 훨씬 도드라지게 보입니다. 바로 콜라주인데요. 일반적으로 콜라주라 하면 잡지, 신문과 같이 다른 매체를 오려 한 화면에 배치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로 재구성해내는 기법을 말합니다. 하지만 김동수 작가는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오려 배치함으로써 그림의 밀도를 조절하고, 내용과의 연결을 만들어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처럼 오래된 가옥을 표현하는데 누룽지색 종이를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진한 베이지 색상의 종이 위 색연필, 물감, 크레용 등 여러 매체로 그림을 그리고 오려, 배경에 배치함으로써 페이지들을 구성했습니다. 모두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기에 통일감과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첫 번째는 뱀이군요.

콜라주가 내용 전개와 어울리는 탁월한 표현방식임은 동물들의 복원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왼쪽 페이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뱀은 처음에는 손상, 분절되어 다른 종이 위에 토막토막 나누져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정성스러운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하나의 몸이 되고, 이젠 한 종이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시각적으로 뱀이 붕대를 감았어도 아픔보다는 치유받았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또한 그림으로부터 여유 있게 잘린 종이는 여백의 미이자 안도감을 줍니다. 복원을 마치고 이불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뱀의 모습은 이제 편안히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책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장의사이자 치유자입니다.

내용의 구성은 집의 외부를 보여주는 원경, 집 내부에서의 치유 과정으로 반복됩니다. 집의 외부는 비슷하지만 구름이 흘러가고, 고양이가 지나다닙니다. 집 안에서는 각 동물의 장례의식이 반복적으로 치유 - 복원 - 쉼으로 이루어지며 주인공의 행위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치료를 모두 마친 주인공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휴식시간을 가집니다.

새벽이 되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때, 할머니는 화단에 피어있던 하얀 꽃을 리어카에 꽂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나루터에 다 달아 배에 동물들을 싣고 이 꽃으로 장식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을 위로하는 국화이지요. 새인 오리는 땅과 하늘을 잇는 매개자로서 배를 이끌어 강 저편으로 죽은 동물들을 인도합니다. 동물들은 이제 쪼개지지 않은 온전한 하나의 그림으로 편안히 쉬면서 여행을 떠납니다. 수면에 떠있는 연꽃들을 보니 그들은 극락으로 가는 중인 것 같네요. 


해가 떠오르고 주인공은 동물들에게 제목과 같은 "잘 가, 안녕!"이라며 인사를 합니다. 면지는 글은 오늘도 어제처럼 맑다고 하지만 이 말이 온전히 희망의 메시지는 아니여 보입니다. 어제의 맑은 날에도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있듯이  뒷 표지로 이어진 어둑한 밤은 오늘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은 핼러윈 데이이기도 하기에 죽음이라는 키워드와 맞닿아 있는 그림책을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어둡지만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푸르름 속에 치유가 들어있는 <잘 가, 안녕!>가 여러분에게도 즐거운 여행지가 되었길 바라며 저는 다음 주에 또 여러분을 뵙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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