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코너

가끔 아이에게서 어른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by 선우

장을 보러 갔다.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미리 적어온 리스트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하나씩 담는다. 우유도 필요하고, 고기도, 나름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야채들도 카트에 넣는다.

큰 마트가 있는 멀티 플렉스 몰을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코너가 눈에 띈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각양각색으로 열을 맞춰 진열되어 있다. 요즘에는 어른들이 사용해도 무방할 장난감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로 대단할 정도다.



코너를 지나가다 부모님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가 보인다. 어른이 봐도 재밌게 생겼는데 아이들 눈에서는 오죽할까. 한참 떼를 쓰던 아이는 부모님의 완강한 태도에 풀이 죽어 장난감을 제자리에 놓는다.

그 옆에 또 다른 아이가 있다. 기차 레일 레고와 옆에 있는 라이언 인형을 둘 다 사달라고 부모님한테 떼쓰는 중이다. 지난번에 비슷한 것을 샀었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이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아이는 작은 입을 앙다물고 둘 다 손에서 놓지 않는다. 단호한 부모님의 마지막 일격. 둘 중 하나만 사줄 수 있다고 최후통첩을 날린다.

아이는 고민에 빠진다. 결국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무언가 단단히 결심을 한 듯 인형을 응시한 뒤 내려놓는다.


지켜보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이의 표정이 아니다.

체념하듯 장난감을 내려놓을 때의 아이의 표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떼를 쓰다가 갑자기 납득한 아이의 표정. 그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떼를 써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깨달음이었을까.

이렇듯 커가는 아이에게서 불현듯 어른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닫는 진실 중에 하나는 '세상은 살아가면서 모든 선택지를 다 누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커가면서 하나를 손에 쥐려면 손에 있는 다른 것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가끔씩은 하나를 선택했을 뿐인데, 여러 개를 동시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선택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아껴오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오래 이어져오던 인연을 잃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다.


여행 갈 때는 아끼는 물건 가져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잃어버리지 않겠다며 호언장담한 후 물건을 여행지에 가지고 갔다가 대체 그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때가 있다.

물건을 잃어버린 것은 속상하지만 우리는 물건을 잃어버린 대신에 소중한 추억을 얻고 돌아온다. 여행지에 가서 찍었던 사진들, 새로운 만남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던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을 눈 감고 입안에서 음미하며, 그래, 그깟 물건 하나 잃어버린 게 대수냐고 자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분리수거를 하듯, 책장 위에 쌓여있던 먼지들을 털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 감정도 비워내야 한다.

인간관계는 항상 말끔히 털어내지 지는 않는다. 최대한 싹싹 그러모아 남김없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비우고 난 후에는 흔적이 남는다. 마치 이사할 때 벽에 오래 걸려있던 시계를 떼어냈을 때 그 테두리에 시계의 자리가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선택을 하고 흔적을 남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던데. 우리는 쓰던 물건을 남기고, 살던 방을 남기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우리 스스로를 각인시킨다. 최근 들어 유튜브를 들어가면 고독사 특수 청소 현장에 관한 영상들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뜨고 있다.

‘고독사 사고 발생 현장. 특수 청소 영상입니다.
불편한 영상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영상을 틀어보면 시청자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부분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흑백처리를 해놓았다. 찬찬히 영상을 보고 있자면, 한 사람이 삶을 영위하던 공간과 그 사람이 사용하던 이불, 책상,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한 사람의 삶의 선택들에 의한 흔적인 것이다. 보고 나면 마음이 아래로 푹 꺼질 듯 허무해진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나눴을 사람, 또한 누군가와 같이 슬퍼하고 웃었을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남겨진 것들.

영상 밑의 댓글들은 따뜻하고 좋은 말들로 가득하다. 좋은 말들만 남기기로 미리 모여 약속한 듯이 말이다. 그 말들을 보며 내 마음에 따스함이 가득 찬다. 댓글에 좋은 말을 쓰는 것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또 선택을 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 영정사진 속의 그 사람은 해맑게 웃고 있다. 그래 이만하면 잘 버텨왔고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한동안 묵념한다.




고등학교 사생대회 날에 갑자기 비가 왔다. 행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학교 측에서는 학교 안에서 진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밖에 있는 풍경을 그릴 수가 없었고, 우리는 미래의 모습을 주제로 그렸다. 다른 아이들은 미래의 도시 모습을 표현했다. 날아다니는 택시, 드론으로 커피를 배달하는 그런 그림들.

그때의 나는 나의 영정사진을 그렸다.

‘먼 훗날 나는 웃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될 거야.'

내 그림은 사생대회에서 장려상을 탔다. 아직도 내가 왜 상을 탔는지는 모르겠다. 반항기가 가득했던 고1의 패기를 인정해주신 것일까? 아니면 그림 뒤 설명에 감탄하여 상을 주신 것일까? 그때 내가 써놓았던 설명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건 '인생의 마지막에 활짝 웃는 삶을 살고 싶다' 였을 것이다.

지금 내 생각에 그림 속 영정사진은 나의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이의 얼굴을 하고 태어나 잠깐 어른이 된 듯하다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죽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을 다 보고 계산하러 가는 길이다. 요즘에는 무인 계산기가 많이 보인다. 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서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할 때 자주 이용하곤 한다. 그렇지만 오늘만은 점원이 있는 계산대에서 기다린다. 퇴근 후 시간대라 내 앞으로 3명이나 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점원이 바코드에 물건들을 찍는다.

'포인트 적립 도와드릴까요?'

- '번호로 찍어도 될까요?’ '주차 필요하세요?'

- '네. 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꼭.

점원과 눈을 맞추고 인사한다.

이게 나의 선택이다.

“감사합니다"

내 목소리가 너무 우렁찼는지 점원이 씽긋 웃는다.

아이의 표정이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내 표정도

아이의 표정이 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삶은 선택을 한 후에 나머지 선택지를 선택했더라면 하고 상상하는 후회의 연속이다.
삶은 주사위다. 순전히 운명에 맡기는 게임이다. 하나를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 생각했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 천지인 세상이다. 그럴 때면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가 하는 생각에 한없이 허무해진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삶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연속의 무한고리다. 고통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선택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가끔 아이의 얼굴에서 어른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선택의 무게를 어렴풋이 깨달은 그 표정.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어른의 얼굴에게서 아이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어른의 얼굴에서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

믿을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이루어 가려는 세상을, 난 믿는다.



카트를 끌고 나와서 장 봐온 물건들을 차에 싣는다. 카트는 제자리에 반납해둔다.

그리고 오늘의 생각들도 제자리에 반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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