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일

달빛 걷기

by 선우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몸이 항상 찌뿌둥하다. 몸이 불편하니 머리가 잘 돌아갈 리가 없다. 평소에 쉽게 하던 일도 잘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토네이도가 인다.

스트레칭에 좋다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해본다. 그러다 며칠 소홀해지면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버리는 건 금방이다. 몸에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말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간다고 한들 이 소리가 멈출 것 같진 않다.


이 정도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운동부족인 게 분명하다.


또한, 우두득하는 소리가 멈출 때까지 꾸준히 운동에 정 붙일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자꾸 기름칠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주기별로 돌아오는 강제적 등산을 해야 할 때인 듯싶다. 풀로 딱 붙인 듯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낸다.

프로등산러이기를 소망하는
꿈나무 등산러 등장입니다.


이번에 북한산 등산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가야 하는 길은 정릉탐방센터에서 시작해서 보국문, 대성문을 통해 다시 정릉탐방센터로 끝나는 수미상관 코스다.



간편하게 들고 갈 것만 챙기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이 넘게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뒷좌석에서 버스로 하는 여행 분위기를 내본다.

살짝 졸았다. 도착까지는 아직 조금 남아있다. 처음 보는 동네의 분위기의 낯섦이 설렘으로 바뀐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 똑같은 아파트, 마트와 체인점들이 보인다. 평소에 보던 익숙함에서 살짝 비껴가 있는 풍경이 새로움으로 가득 찬다.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정류장에서 정릉탐방센터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걸어간다.


첫 번째 목표인 보국문까지는 출발지점에서 거리가 2.5km 정도 된다. 초보코스라고 얕보면 안 된다. 끊임없는 오르막길과 돌계단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경치를 감상한다. 얼마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나 자신을 한대 치고 싶어 진다. 운동을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니 숨이 이렇게까지 헐떡거리는 게 정상인가 심각하게 의심된다.

보국문까지 0.7km가 남아있다. 점점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돌계단은 가파르다. 한걸음 한걸음 더디게 올라간다.

드디어 보국문이 보인다. 위로 올라갈 수 있어서 올라가 봤다. 미리 싸온 김밥이 차갑게 식었다. 하나 입에 넣고 보온병에 담아온 차를 한잔 마신다. 녹차로 유명한 오설록 브랜드에서 산 ‘달빛 걷기’라는 차를 싸왔다. 그 안의 설명을 읽어보면,

달큰한 배향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감도는 후 발효차

라고 되어있다.

어디서 아는 맛인데, 이게 무슨 맛이지?


하고 고민하다가 결론이 났다.

마셔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탱크보이 맛이다.



성벽 위에서 소심하게 사진 찍어보려는데 옆에 계신 다른 등산객이 올라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따로 울타리가 설치되어있지도 않고, 높이를 보니 아찔한 것이 위험하긴 하다.

올라가지 마세요
올라가지 마세요
누군가 이미 한번 올라간 곳입니다

내려가지 마세요
지금껏 올라온 모든 것이 유효합니다

아무것도 말아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앉아서 눈을 감아요
어렸을 때 꿈의 파편을 같이 파헤쳐봅시다

다시 눈을 떠봐요
모든 것이 부유하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것을 누릴 것입니다

< 올라가지 마세요 - by 선우 >




보국문에서 대성문까지의 발길을 다시 재촉한다. 성벽을 따라서 올라가는 풍경이 장관이다. 가다가 너무 가파른 길은 밧줄을 잡고 클라이밍 하듯이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이것 또한 재미다. 대성문을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인생 샷도 한 장 건진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대성문이 나온다. 고요한 산속에서 멀리 도시를 바라본다. 도시의 안쪽의 구석구석에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교통체증의 소음과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상쇄시키기 위해 귀를 막았던 것이 불과 2시간 전인 게 믿기지 않는다.

고요 속에서 침묵을 만끽해본다.


대성문을 찍고 다시 정릉탐방센터로 내려오는 길. 하산하는 발걸음은 날아가는 것 같다. 산을 내려가면서 무릎 다 상하게 턱턱 내려가는 걸 의식하고 있지만 내려가는 게 우선이다. 일단 내려가련다.

시작점인 정릉탐방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다리는 후들후들거리고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폐를 새것으로 갈아 끼운 느낌이다. 건강해진 기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안에서 잠시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집 주위에 도착해서 중국집에 들렀다. 평소에 짜장이냐 짬뽕이냐 물으신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짜장을 고를 테지만, 오늘만큼은 짬뽕밥을 골랐다. 얼큰한 국물에 온 몸이 녹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 같다. 오늘은 일찍 잠들어야만 할 것 같다. 평소에는 눈이 말똥말똥할 시간이지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운동은 상념을 없애준다.
고민으로 아픈 머리보다 당장의 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덮는 셈이다.
힘들어도 가끔씩은 운동을 하리라 다짐한다.


오늘 하루의 짧은 여행을 끝마쳤다. 오늘의 머릿속 소용돌이는 당장에 몸의 피로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대로 충분한 하루다.

발끝으로 찌릿한 감각이 느껴진다.

신이시여 바쁘시지 않다면

새까만 하늘에 별빛이 쏟아지는 꿈을 꾸게 해 주세요.


오늘 밤에는 달빛이 차갑게 비추는

뭉게구름 속에서 나는 듯이 걸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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