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 있다
흔들리는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잡고
가만히 있어보려 노력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날이 있다
뭉뚱그려진 구름은
흐린 미세먼지를 안고
이곳저곳 철없이 쏘다니고
어지럽혀진 마음은
머리 위 까만 구름을 이고
이쪽저쪽 조심성 없이 부딪힌다
긴 바지에 긴 팔이라
까먹어버린 낯선 내 살갗에는
아무도 모르는 시퍼런 멍이 새겨졌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표지, 뭐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
너만 특별한 거 아니야
아픔도 깜빡하고 표현에 서툴던 아이는
커서도 똑같은 응어리를 맴맴 돌고 있다
나는 멀쩡히 서 있는데
바람이 유독 거센 날이 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짱돌이 날아와 꽂히는 날이 있다
나는 무던히 살아가려 했는데
아픔도 슬픔도 밀어내기만 한다면
다가오는 큼지막한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는
미련하고도 우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세상은 언제나
예측하기가 어렵고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나가겠지만
유독 바람이 거친 어느 날
천둥과 번개에게 내 심장을 쥐여준 날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빨간 페인트를
소파와 침대에 점점이 자국을 남기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