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에 대하여
아주 가끔 공덕역을 거쳐 일을 하러 갈 때가 있습니다. 공항철도에서 내려 6호선으로 갈아타러 가는 길, 카페를 찾다가 던킨을 보고 들었갔던 게 두어 달 전. 요즘 보기 힘든 친절한 직원분의 쾌활함에 반해 얼마 전에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하는 스피치 수업의 요소를 볼 수 있었어요. 환승하기 전까지 딱 20분을 머물면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3P를 고려한 친절한 직원
서울 지하철에서 특히 출퇴근길에 사람들은 참 바쁩니다. 그 때문인지 저도 그렇지만 순간 생각지도 못하고 이어폰을 끼고 내 귀를 막고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역사 안에 있는 던킨에서 제 앞 순서로 주문을 하시던 분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원 분은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는 듯 더 큰 목소리와 큰 입모양으로 "따뜻한 음료, 차가운 음료 중 뭐 드시겠어요?" 하고 묻습니다.
그 직원 분을 바라보다가 저도 미처 이어폰을 못 빼고 주문을 하는데 저에게도 똑같이 입모양을 크게 하며 "사이즈 어떤 걸로 드릴까요?"라고 확인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을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일 역사 안의 카페. 그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 따위는 느낄 수 없게 웃는 얼굴로 손님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참 감동을 받았고 많은 생각을 얻었습니다.
말을 할 때는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하라고 말합니다. 3P라고 표현하는데 purpose, peple, place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그 직원 분은 역사 안에 위치한 카페에서(place)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people) 빠르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습니다.(purpose)
그분을 통해 짧은 말속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소통, 과연 이 세대만의 문제일까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해본 곳이 던킨 도너츠였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그때 당시 그냥 참 좋았던 체인점. 정확히 한 달 반 뒤에 일본 여행을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점장님은 저에게 딱 하나만 확인했습니다.
"일 오래 할 수 있어요? 저희는 오래 할 사람을 찾고 있어요."
한 달 반 뒤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할 수 없었지만,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지라 무조건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하고 10일 더 일하고 그만뒀어요. 그때 그 점장님께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미안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그 점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시대가 많이 변했어. 요즘 어린애들은 정말 모르겠어."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 20대 수업을 가면 정말 자주 하는 말.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간다는 건 바뀐다는 의미니까요. 그 무엇이든 말이지요. 오히려 고이지 않고 잘 흘러가고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그곳을 오래 지켰을 것 같은 그 직원 분과 또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다른 직원분을 보며 시대의 흐름만은 탓할 수 없다 생각도 들고요. 소통의 의미를 '수용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스피치 강의를 하면 언어적, 비언어적, 내용 구성에 이어 소통까지 다루게 됩니다. 20분 동안 공덕역 던킨에 앉아서 '스피치'에 대한 정의가 정리되던 순간. 저에게는 1평 남짓한 그 작은 공간이 분위기 좋은 그 어느 카페보다 영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상대를 고려하는 말하기, 그리고 진정한 소통의 의미. 한 해를 시작하며 제가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것을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하는지 알게 해 준 공덕역 던킨 직원분께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