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 Feb 25. 2024

의미를 찾아서

프롤로그

'내가 말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어떤 짓을 하는지 아슈? 그가 말했다. 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는 그 생각을 안 할 때까지 질리도록 먹고 또 먹고 포식하고 과식합니다. 한 번은 어렸을 때 체리를 먹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적이 있어요. 돈이 없으니 조금씩 감질나게 사 먹는데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체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가지고 놀면서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은화를 훔쳐 그걸 들고 과수원으로 가서 체리 한 광주리를 샀고요. 구석에 숨어서 먹고 또 먹고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죠. 그랬더니 배가 거북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모조리 다 토했죠. 그러고 나서 체리에서 완전히 해방됐죠’

<그리스인 조르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프로젝트가 끝났던 어느 날. 오후 세 시. 사무실은 눈치껏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연차휴가로 듬성듬성 비어있는 자리로 조용했고, 그나마 남아있는 자리에서 들리는 키보드 소리는 리듬으로 보아하니 다들 각자의 메신저 방으로 떠난 듯했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피해 옥상정원으로 도망쳤습니다. 미지근한 공기. 덥지도 춥지도 않은 평범한 오월의 어느 날. 맑지도 흐리지도 못한 애매한 하늘을 보며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나는 그런 세상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구나하고. 뛰어내려야겠다든지 뭐 그런 호들갑스러운 건 아니었고요. 그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조용하고 미지근하게.


이상하게 그날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날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걸릴 줄 몰랐습니다. 여기 모인 이야기들은 그날이 있었기에 쓰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와 자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고, 나를 살게 하는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모아두려고 했습니다. 


저에겐 일상과 사랑, 좋은 이야기, 그리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기분 좋고 몽글몽글한 것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조각이 나를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 안에 있었으니까요. 그 조각을 마주하고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꾸역꾸역 모아 써내려가면서 나에게서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난 시간의 의미를 뽑아내겠다고. 충분히 찾아서 씹어먹고 토해내서 다신 돌아보지 않아도 되도록 말입니다. 마치 조르바가 체리와 끝장을 보겠다고 결심한 것처럼요.


인생의 전환점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아주 은밀하게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게 변할 수 있다는 것도요. 어디선가 저와 비슷하게 전환점에 선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일상에서 제법 괜찮은 순간을 발견하고, 나쁜 기억을 마주하고,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저와는 또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스스로에게서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