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케이스
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는 부모님을 만나는 게 진짜로 두렵다.
숨 쉴 때마다 나오는 잔소리나 측은한 듯, 한심한 듯 바라보는 눈빛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게 있다. 내가 그들과 피를 나눴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는 것. 그것만큼 나를 소름 돋게 하는 일은 없다.
안다. 우리 부모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세상에 더 별로인 어른은 세고 셌다. 근데 그들은 나에게 이런 기분을 선사하지 않는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니까. 나와 상관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 부모면 좀 다르다. 그들은 나와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고, 보내기로 기대되는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그들의 어떤 특성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스며들어 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들의 손에 키워지는 시간 내내. 내가 질문을 품기도 전에 말이다.
이렇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짚어 낼 수는 없다. 작고 사소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감정이 되고, 그 감정을 누르고 누르면, 어느 날 문득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 이거 뭔가 잘못됐는데… 잘 안 살아지는데’ 뭐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시작은 몰라도 관련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사건을 기억해 내는 건 그리 어렵진 않다. 아주 많으니까.
그날도 추석인지 설날인지 아무튼 평범한 명절날 점심이었다.
제사 문제로 다툰 이후 친가친척들은 더 이상 큰집에 모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도 가족끼리만 모여 밥을 먹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와 새언니, 조카 둘 그리고 나.
여느 때처럼 식탁 모서리에 앉아 조용히 밥을 몇 술 뜨던 참이었다. 무슨 얘기 중이었던가 아니면 그저 정적이 흐르고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며칠 전 산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와 오빠 둘 다 별생각 없이 듣으며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아 그렇구나. 그랬어요. 뭐 그런.
그 순간 갑자기 아버지가 격양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니들 마지막으로 산소 내려간 게 기억이나 나냐. 니들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다 챙기면서 살아야 된다. 그렇게 니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되냐. 똑바로 살아야지, 쯧.
뭐 그런 대사였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버럭에 밥을 먹다 눈이 똥그레져 고개를 들었다. 오빠랑 눈이 딱 마주쳤다. 역시나 똥그란 눈. 음 그치, 이 상황. 분명 익숙한데 매번 당황스럽긴 하고, 허허.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어본다. 그리고나니 오빠가 적당히 분위기를 풀며 말을 잇는다.
아니 뜬금없이 뭔 소리냐 산소 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번에 내려갈 때 얘기하면 시간 봐서 같이 내려가던지 하겠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초대를 안 했는데 어딘 줄 알고 어떻게 가요. 그리고 본인 부모님인데 본인이야말로 잘 안 가시잖아요. 흠흠.
의연한 대꾸에 별안간 머쓱해진 아버지는 조용히 밥을 먹는다.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곤 벌떡 일어나 설거지통에 내려놓곤 거실 소파로 가서 텔레비전을 켠다.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딱히 정답게 나눌 말은 없고, 놀고 있던 조카들에게 눈을 돌리며 많이 컸다는 이야기나 식탁 위 불고기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면서 식사를 마친다.
이런 순간이다. 불편한 감정이 솟는 순간. 내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아빠의 버럭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무서웠다. 자주 놀랐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성질부터 나지만.) 내가 저렇게 될까 봐 무서웠다. 아빠 닮을까 봐. 나이 들면 부모님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보인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끔찍했다. 혼자 흥분해서 막말을 쏟아내고는 입 꾹 닫고 꽁한 저 모습.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타인을 향한 괘씸함. 그로 인한 수많은 꼰대 모먼트와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공격성.
나는 이 모든 행동의 근간을 안다.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서투른 감정 표현과 거기서 기인한 감정 조절 문제라고. 내가 감히 누군가의 수많은 행동과 실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에게도 그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