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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커밍우먼 Oct 22. 2021

사회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탄생시키리라!(후기#1)

소셜벤처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만.

같이의 가치

참으로 많이 들어봤다.

언어유희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던 것들.


막상 '가치'있는 일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과거의 나는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하지 않는 '가치'가 진정 의미가 있을까?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바람직한 것.


마음에 다시 새겨본다. 바람직한 것. 



#유난히 정도 많고, 조부모와도 가까웠던 나

 어린 시절,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어른은 외할머니였다. 서울에 사셔서 함께할 시간이 많았다. 같은 아파트에 산 적도 있었으니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사교적인 스타일에 상냥하고 다정하셔서 동네에 늘 친구분들이 많았다. 나는 엄마한테 혼이 나면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곤 했다. 할머니와 자주 같은 잠자리를 썼고 아침 일찍 아파트 뒤에 있는 공원에 산책도 매일 나갔다. 저녁엔 배드민턴도 치고. 우리 할머니도 유난히 그런 나를 이뻐했다.

 반면에 친가를 생각하면 조금 감정이 다르다. 뭉클하다. 시골마을에 사셨던 우리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낯을 가린 적도 있다. 아마 비교적 불편했던 시골 마을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서울 할머니와는 달리 상냥한 편은 아니셨지만 그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내려가면 늘 몰래 불러서 용돈도 주시고 숨겨놓으신 아이스크림을 주시기도 했다. 한 번은 할아버지댁에 1주 정도 혼자 살아 본 적이 있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사랑방에 들어가 밥 먹을 때만 나오고 그 외에는 숨어있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되신 할아버지는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위험한 비탈길을 올라가야지만 있는 꼭대기 슈퍼로 향했다. 내 기분을 풀어주시려고 데려간 것이다. 그의 사랑에 무한 감사하고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크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골로 내려갔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표현에 서투르셨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셨다.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 줄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여겼다.

 시작은 할머니. 갑작스럽게 몸이 좋지 않아 입원하셨는데 장기가 많이 망가져 퇴원하실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뇌출혈이 왔고 한차례의 큰 수술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내가 기억하던 할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 말씀도 못 하셨고 주무시기만 했다. 마음이 참 아팠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리니 정말 잘 드셨다. 그리고 이 장면은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장례 내내 할아버지는 우시기만 하셨다. 할머니를 참 많이 아끼셨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할아버지는 충격이 크셨으리라. 할아버지는 약간의 치매도 있었는데 몸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고 위중한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지기도 했다. "아프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던 그를 병원에 두고 나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떠나시고 난  1년 후, 나는 할아버지도 보내야 했다.


 항상 마음속에서 그리워하고 보고싶은 내 든든한 사람들.


#원대한 꿈

 '독거노인', '홀몸노인'에게 대화할 상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유로 인공지능 스피커가 대안처럼 제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굉장히 좋은 의미이고 효과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제일 아쉬웠던 건 시골마을에 거주하시는 대부분 시니어의 자녀는 수도권으로 올라가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아쉬웠던 건 그들을 기록한 영상 혹은 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심에는 시니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잘 되어있는 편이다. 자녀들이 부모가 무얼 하는지 다 아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 시골마을에 사시는 분들은? 그냥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한다. 뭐 하시는지 잘은 모르고. 아마 밭에 가셨겠지.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우리는 한 지역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도심이 아닌 외곽 마을로 가 해당 아이템 MVP를 해보기로 계획을 했다.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더 잘하시기도 한다. 과거 이야기, 가족 이야기, 마음속에 담아둔 다른 이야기.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선정한 시니어의 이야기를 며칠동안 듣고 기록했고(이건 책으로 나왔다), 하루 동안 따라다니며 그의 일과를 담고 인터뷰도 했다. 완성본이 나왔을 때 그 뿌듯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살아있음을 격렬히 느꼈다고 해야 하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 생전에 해드렸으면 나는 영상 속 그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을 텐데. 아쉽다. 

 선정된 시니어의 가족들에게 전달드렸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시는지 몰랐다",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나와 뭉클했다"등 그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글로 적으니 단기간 해왔을 거 같지만,

정부지원사업 2차에 선정되면서 거의 1년은 이 일에 매달렸다.


수없이 많은 코칭을 받았고, 아이템이 피벗되기도 했고(이게 시간을 다 잡아먹었다)


문제는 지자체에서 각 시니어에게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것과 자녀분들께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비용이 든다고 하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도 하시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록'의 가치의 중요성을 무겁게 보고 있었다.


꼭 필요한 기록들.


'기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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