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좋은 글을 쓰는가? 단연 품격이 있는 이, 좋은 품성을 가진 이가 좋은 글을 쓴다. 어떤 사람이 품격이 있는 사람인가? 공부하는 자, 학습하는 자, 생각하는 자, 질문하고 대화하고 경청하는 자가 품격이 있는 자다. 품격이란 오감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는 자, 머리로 사고하는 자,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만이 품격을 가진다.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으면, 보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말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품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품격은 감각의 제국이다.
좋은 품성이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이 곧 좋은 품성을 가진 자가 아니다. 착하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가진다. 무례함과 속임수, 부정의와 모함에도 움직이지 않고 반론하지 않는 착한 자는 고귀한 품성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무례함에 단호하게 나무라는 자, 속임수와 부정의를 고발하는 용기를 지닌 자, 모함엔 동조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 그가 좋은 품성의 소유자다.
오감을 쓸 줄 알고, 좋은 품성을 가진 자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품격을 갖춘 자,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니 좋은 글이란 좋은 인간이 뿜어내는 향기와도 같다. 그것은 하나의 흔적이고, 향기다. 품성과 품격이 없이 듣기 좋은 말을 내뱉는 자는 교활하다. 품성과 품격이 없이 그럴 듯한 글을 써 내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하다. 이러한 말과 글의 본성이란 오래가지 않아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거기 서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변함없이 한 그루의 나무처럼 좋은 작가는 품성과 품위를 유지한 채 글을 쓴다. 그는 자신을 뽐내려 하지 않고 그럴 이유조차 없다. 그에게 글이란 향기 같은 것이어서 저절로 묻어나며 오래 남는다. 좋은 글을 각인되고 파고들며 대지를 흔든다. 거기, 글의 위대함이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이는 함부로 펜을 들지 않는다. 그는 우물이 적절히 차 오를 때까지 기다릴 줄 알고, 드디어 물이 찼을 때 조용히 물을 뜬다. 그 물은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걸러진 정수요, 맑디맑은 물이다. 그 물은 누구에게나 이롭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글은 진정으로 천국을 건설한 이에게서 나오고 읽는 이를 감동시킨다.
좋은 글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인간이 글을 쓰고, 그 글이 타인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린 새로운 곳으로 한 발 나아가기 위해 글을 읽고, 또 타인을 구원하려 글을 쓴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을 품격과 좋은 품성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제시한다. 그 어떤 사람도 목표 없이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목표 없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목표를 품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인내했을 때 비로소 가장 적절한 단 하나의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한 줄의 문장이 가진 고귀한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 누구도 알량한 과시욕으로 글을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글엔 향기가 없고 그 어떤 것도 타인의 가슴에 새길 수 없다. 그것은 무딘 칼이요, 영혼이 없는 탈에 불과하다.
오늘 나를 바로잡고 고된 여정을 나아가면, 나는 내일 품격과 좋은 품성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한번에 두세 가지를 다 손에 쥘 수 없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좋은 글이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문이다. 그 문을 여는 것은 나의 의지다. 의지! 의지! 의지!
좋은 품성을 가지라.
품위 있는 인간이 돼라.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품어라.
스스로 문을 열어라.
우물이 맑은 물로 찰 때까지 인내하라.
향기로 타인의 가슴에 각인되는 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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