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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8. 2024

제라가 있기 때문에 이 우주도 있는 거야

어디 갔다 왔어?


응. 그냥 여기저기. 제라하고 대화를 많이 나눴어. 그리고 좀 재웠어.


나는 제라가 듣는지 확인하며, 아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라는 이미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말은 안 해?


응. 그냥 많이 힘든 거 같아. 이걸 같이 기억하자. 


이건 우리한텐 마치 전쟁 같은 거야. 

제라가 저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고 있지만, 우린 부모로서 이 상황을 아주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해.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돼.


응, 알았어.


아내는 말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자기하고 나, 우리 둘 책임이야. 

자긴 엄마, 나는 아빠로서 제라를 돌봐야 해.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제라가 이 일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게 우린 도와야 해. 어떤 의무나 책임도 강요해서는 안 돼.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야. 학교도 학원도 전부 다 쉬게 해.


알았어.


그날, 제라는 내 팔에서 잠들었다. 아무 일 없었단 듯 편안한 얼굴로.


다음 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차를 몰았다. 

친구가 하는 돈가스 가게에서 냉모밀을 먹이고, 교회로 갔다. 나는 목사님에게서 아이 기도를 받고자 했다. 담임목사님은 부재중이었고, 부목사님이 계셨다. 부목사님은 마치 아빠처럼 제라와 상담해 주시고, 마지막에 진심어린 기도를 해 주셨다.


나도 어렸을 때 잘사는 친구들, 공부잘하는 친구들,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 같은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 친구들을 놀리고 때리고 그랬단다. 지금 제라가 받는 상처들은 나 같은 애들 때문에 벌어지는 것 같아. 제라는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지?


목사님이 묻자 제라가 네, 하고 대답했다.


아이 때문에, 아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현명하다.

물론 나 혼자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다양한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독무대가 아니다. 때론 타인이 필요하다. 그들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을 수 있고 나보다 나은 해결책을 주기도 한다. 타인을 믿지 못하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으리라. 또한 나 자신을 믿어야 타인을 믿을 수 있다.


제라는 오늘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빠의 여자 사람 친구, 친할머니, 목사님... . 제라는 한층 표정이 밝아졌다. 제라는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안아주고, 현명한 길을 제시해 줄지 모를 많은 어른이 자신 주변에 있다는 것을. 나는 제라가 그 사실을 알길 바랐다.


혼자가 아니야!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제라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엔 또 다른 타인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되도록 많은 말을 직접 하지 않았다. 

그저 제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있어 주고, 제라의 표정을 살피고 마음을 헤아려주고자 했다. 제라가 물을 때에만 필요한 말을 건넸다.


만약 제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 거란다. 

그러니, 제라 입장에서 제라는 우주의 중심이야. 제라가 있기 때문에 이 우주도 있는 거야. 제라가 아플 땐 우주가 잠시 멈춘단다. 이 우주는 무심해 보이지만 제라를 관찰하고 있는지도 몰라. 제라는 혼자가 아니야.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수많은 어른들이 제라를 응원한단다. 천천히 이 문제를 이겨내자. 시간이 필요해.


무서워.


제라는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 아가. 얼마나 무서울까. 아빠가 곁에 있을 거야. 제라가 더 이상 무섭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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