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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3. 2024

최선을 다해도 아이에겐 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딸애에겐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와 통화를 했고, 대화를 했다. 물론 아이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 말 대잔치 하듯, 나는 계속 떠들어댔다. 그것이 아이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통화를 못 하면, 카톡을 했다. 


끈이 필요했다. 아이는 외로울 수 있고, 무서울 수 있다. 학교에 빠지는 것, 일상에서 이탈하는 것, 혼자 있는 것... 그 어느 것이든 아이를 괴롭힐 수 있었다. 나는 아이 옆에 아빠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했다.


먹을 것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이다. 


안정감을 준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읽는 것 같은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는 아이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 나는 일부러 먹는 것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이 대화를 통해 자신을 괴롭혀 온 문제들, 걱정거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 벗어나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내와 통화를 했다.


나는 소상하게, 내가 파악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최대한 놀라지 않게, 담백하게. 아내는 놀랐다. 무엇보다 그 털털하고 소탈하고 꾸밈없으며 천진난만한 둘째가 칼로 자기 얼굴에 자해를 했다는 것에 아내는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으리라. 나 역시 그랬으니까.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우린 차에 탔다. 나는 목적지라곤 없이 차를 몰았다. 아이 눈치를 보면서, 사건을 캐물어야 했다. 진상 파악!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알아내야 했다.


제라,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니?


아이는 말이 없다.


그냥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고. 제라, 예전에 미술 할 때 기억나지?


아니, 기억 안 나.


그때, 소묘할 때 어떤 대상을 그려나갈 때 천천히 선 하나씩 그려나갔던 것처럼, 지금 너한테 있는 문제를 설명할 때도 그렇게 하면 돼. 선 하나씩 그리듯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대로 말해줘. 지금 당장 아니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떠오르는 게 있으면.


아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신호등 10개쯤을 지날 무렵 아이가 입을 뗐다.


친구가 무서워.


친구가... ?


응.


선생님은?


선생님은 그저 그래. 관심없어.


그렇구나.


친구가 왜 무서워?


그냥 다, 보기 싫어. 만나기 싫어.


음... . 


차는 이미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가로수 너머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아이는 잠에 들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애착 인형을 꼭 안은 채로. 지금은 잠이 필요하다, 내 아이에게. 그것 아는가? 정신적 피로감, 우울증, 극심한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약은 잠이라는 것을!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무엇보다 잠 자는 약을 처방한다. 내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이를 꼭 안아주고, 스킨십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잠을 자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큰 효과를 지닌다.


내 옆에서 잠든 아이는 지금 당장은 아무 걱정이 없으리라. 


자신을 옥죄어오던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 채 편안한 공간과 시간을 여행 중이리라. 나는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평온함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꺼낼지 상상하면서.


나는 계속 차를 몰았다. 어디까지 갈지 알지 못한 채로. 음악도 없고, 소리도 없고, 방향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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