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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4. 2024

초6딸, 아빠가 아니었으면 오늘 난 죽었어.

아이는 50분 가까이 잔 뒤에 눈을 떴다. 우린 여주에 도착했다. 그곳 아울렛에서 이것저것 둘러봤다. 


아이스크림 사 줄까?


아니.


젤리 사줄까?


아니.


아이는 두꺼운 검정색 점퍼 속에 한 손을 넣은 채로 다른 한 손으론 내 손을 잡았다. 


그 온기가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찌릿하게 느껴졌다. 2-30분 정도 둘러본 뒤, 우린 다시 차에 올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는 말했다.


제라, 아빠가 있어서 좋니?


응.


제라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니?


아빠.


고마워. 나는 말했다.


그래도, 아빠가 있어서, 이렇게 드라이브도 하고 같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


아이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빠는 제라가 있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만약에 제라가 이 세상에 없었다면, 아빠는 삶 자체에 의미가 없었을 거야. 목표도 없었을 거고. 제라가 없는 삶은 아무 가치가 없어. 제라가 있기 때문에 아빠 삶에 의미가 생긴 거야. 정말이야, 제라야. 고마워. 아빠 곁에 있어 줘서.


제라는 나의 말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인터체인지에 접어들 무렵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그 말이 끝나고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 말에 울컥했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내가 있었기에, 아빠가 있었기에, 아픈 순간을 넘겼다는 말보다, 내 아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정도로 슬픔의 극한, 슬픔의 절벽 끝까지 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것도 아침 시간에.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칼로 자기 얼굴을 그었다. 


정신이 가장 또렷하고 말짱한 아침 시간에 그런 일을 스스로 벌였다는 것은 아이가 감정에 휩싸인 채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아이는 그 시간에 아주 냉정하고, 차분하게 판단하고 그 일을 실행한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음을 조여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아빠, 


응.


한 가지 거짓말 한 게 있어.


뭔데?


내가 오늘 아침에 커터칼로 그랬다고 말했잖아.


응.


사실은 커터칼이 아니야.


그럼 뭐지?


식칼... .


식칼?


응.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부엌칼로 그랬어?


응.


아가, 


응?


아빠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아빠하고 한 약속 기억하지?


아니.


다시는 그런 일 하지 않겠다고 한 거. 그 약속 지켜야 해.


응.


그리고 힘든 일, 어려운 일 있을 때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이 아빠였으면 해. 그것도 지켜줄 수 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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