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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2. 2024

칼로 그은 아이의 볼에 가슴이 무너졌다

딸내미와 다시 통화를 했다. 딸내미는 무심코 자신이 한 일을 털어놓았다.


아빠, 오늘 아침에...


응.


내 얼굴을 칼로 그었어.


뭐? 응? 뭐라고?


칼로 그었어.


어디를?


얼굴...


무슨 칼로?


커터칼로.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이런 일이 나에게, 내 딸에게 일어날 줄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모든 사건은 무심결에 일어난다. 아이들의 사고는 무시로 일어난다. 아빠는, 엄마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들이닥칠 사고에 놀라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 아빠는 바로 그 시간에, 찰라에, 가장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현명한 인간이어야 한다.


아가, 괜찮아. 그렇구나. 아프지는 않니?


응.


나는 생각했다. 이 순간에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나는 말했다.


아가, 얼굴 사진 한 장 보내줘 볼래? 아빠가 좀 볼게.


응.


곧 아이가 톡을 보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 딸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을 순간적으로 되돌이켜 보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왔는데.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고, 여행을 가고, 산책을 하고, 놀이를 보장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줬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일단 아이에게 답톡을 보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나서, 곧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담임선생님은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터였다.


제라 아빱니다.


나는 말했다.


네, 제라 아버님,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요, ...


네, 아버님, 말씀하세요.


제라가 반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문제요? 무슨 문제요?


선생님이 그리 놀라지도 않은 목소리로 되묻는다.


저도 그게 궁금하군요. 무슨 문제인지.


나는 말했다.


우선, 제라가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문제가 있다는 것 말고는 파악된 게 없네요. 선생님은 아시는 거 없죠?


네, 아버님.


선생님, 일단 오늘 제라가 학교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몸이 좀 좋지 않아서요. 내일 다시 전화드릴게요.


네, 아버님. 아, 아버님, 오늘 학교 임원 선거 날인데 혹시 제라는 임원 선거에는 출마 안 하나요?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임원 선거가 웬말인가?


네, 선생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학교 교사는 어디까지나 제3자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할 뜻은 전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직장을 다니는 것이고, 누구나 그렇듯 직장의 문제를 처리하듯 아이 일을 다룬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가 주인이 되어 풀어나가야 한다. 교사는 내 아이를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아이 문제에 있어서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에 대해서라면, 교사는 철저히 중립적이다. 이는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는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다. 그러니,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기대할 필요도 없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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