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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1. 2024

작은딸이 커터칼로 얼굴을 자해했다

이 연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 시작해 보려 한다. 딸내미의 프라이버시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만의 일이 아니다. 종류는 다를지언정 오늘는날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 부모가 유사한 고통, 유사한 문제를 겪는다. 사회가 따뜻하지 않고 만인이 만인을 향한 전쟁을 한다. 삶은 전쟁터다. 아이들에게도. 슬프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체 이런 풍토에서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걸까?


내 아이의 사례를 토대로,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회이자 신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바이러스, 암덩어리를 안은 채, 모르고 그냥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시그널, 고통, 제스처, 호소란 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받아들인다. 아이들과 연관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가, 에 따라서. 나는 방법을 찿을 것이다. 문제를 통해 삶을 개선시킬 것이다. 내게 닥친 역경을 무기로 상황을 바로잡을 것이다.


모든 문제엔 해결 방법이 있어!


영화 '로렌조오일'


나는 영화 로렌조오일을 기억한다. 이 영화는 많은 점에서 내 삶에 영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 깨달음이다. 모든 문제엔 해결 방법이 내재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로렌조오일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 보시라. 특히 부모라면, 이 영화를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신은 어린아이에게 부모를 선물로 주었다. 나는 이 말도 사랑한다. 이 말 역시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믿지 마라. 의사들, 선생들, 어른들, 판사들을 믿지 마라. 나 스스로 내 아이의 의사, 내 아이의 선생, 내 아이의 판사, 내 아이의 어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내 아이에게 문제가 닥치면, 마땅히 도움을 청할 때가 없을 수 있다. 그런 때, 당황하지 마라. 침착해져야 한다. 문제를 응시하고 차분히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부모다.


부모란, 아이에게 전면적인 천사여야 한다. 부모는 어떤 역경에도 아이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까지 보호자 역할을 해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마지막이란 대체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를 의미한다.


부모는 병사다. 군인이다! 내 아이를 지켜내고, 아이에게 안전함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삶은 전쟁터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을도,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내 아이에게는 전쟁터 만큼이나 무섭고 두려운 공간일 수 있다. 부모라면,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아빠 나, 죽고 싶어.


이제 내 아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늘 아침 일찍, 둘째딸내미에게서 카톡이 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죽고 싶다고?


왜지?


나는 곧바로 딸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카톡에도 답이 없다. 나는 침착해지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이의 콜백을 기다렸다.


잠시 뒤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학교가 무서워. 


뭐가 무섭지?


친구도 무섭고, 선생님도 무서워.


그렇구나. 우리 아가. 그래,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 거야. 오늘은 학교 쉬자. 선생님한테는 아빠가 전화할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제라는 쉬어. 그냥 쉬어. 괜찮아.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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