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흔히 무자식이 상팔자라고들 합니다. 뻔한 농담임을 누구나 알지만, 원치 않은 무자식 팔자인 난임 부부는 웃기 쉽지 않습니다. 상팔자 아니라 상상상팔자라도 자식을 버리지는 않겠다는 전제가 깔린 농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식 복이 어쩌니 해도 결국 자식 자체가 복입니다. 아무리 말 안 듣고 속만 썩이는 자식이라도 결국 귀여운 내 새끼입니다. 다들 자식 농사를 짓고, 다들 애간장을 태우고, 다들 한숨 쉬며 고민을 토로합니다. 그 한숨에는 대체로 웃음이 묻어 있습니다.
사실 흔한 말들에 하나하나 예민하게 굴자면 끝도 없음을 스스로도 잘 압니다. 바로 위 몇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자식 농사란 말이 또 슬픕니다. 다들 텃밭에 대파, 상추 심어서 잘만 키우는데 빈둥빈둥 놀며 남의 밭 기웃거리는 꼴이 슬픕니다. 시베리아에서 아보카도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혼자 수백만 평 땅을 다 갈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손가락 빨고 있는지. 별 것 아닌 단어에 혼자 온갖 생각 해봤자 좋을 것 하나 없는데 자꾸 이러게 됩니다.
자식 복이 없으니 다른 복이 와도 시큰둥하고, 복이 조금만 나가도 괜히 서럽습니다. 금전운이 좀 생겼는데 의외로 그다지 좋지도 않고 무덤덤해서, 그 무덤덤함에 살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평생 충치 없다고 자만하고 까불었는데, 일 년 사이에 어금니가 두 개나 금이 갔습니다. 치료는 끝났지만 오복 중 하나인 건강을 어디 뺏긴 것처럼 억울합니다. 자식이 있었어도 딱히 다르지도 않았을 것인데 괜히 이러고 있습니다. 애 키우려면 암만 많아도 모자란 게 돈이니 아주 큰 돈이 아니면 역시 무덤덤했을 것이고, 애 봐야 하는데 아프면 더 힘들고 걱정됐을 것입니다.
복 얘기를 하니 복권 생각이 납니다. 자식 생기면 마당에서 같이 뛰놀고 싶어서, 근사한 집 짓고 싶어서 로또를 했습니다. 꽤 오래 샀는데, 자식이 안 생겨서 그런지 당첨도 안 됩니다. 만날 꽝입니다. 이제 근사한 집도 별로 필요 없으니, 아내와 노후에 맛있는 거나 먹고 다니게 연금복권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도 안 되면 좀 반칙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생각만 '갈아탄다'고 하고 요즘은 둘 다 삽니다. 만날 둘 다 꽝입니다. 자식복도 없고 복권(福券)도 꽝이니, 복받을 권리(福權)가 꽝인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