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서언물을 안주우신대애

by 배유정

10월도 어느덧 꼬리만 남았습니다. 1월, 2월, 3월...... 열두 달이 어찌 그리 하나같이 성질이 급한지. 꽃밭 뛰는 놈, 땡볕에 뛰는 놈, 빨간 산길 뛰는 놈, 하얀 눈밭 뛰는 놈. 똑같이 한 달 내내 뛰기만 합니다. 한 살 먹고 돌아올 때마다 더 빨라집니다. 한 달 뛰면 열한 달 푹 쉬니 앉아있기 싫을 만도 하지만, 그래도 좀 야속합니다.




아내와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농담을 자주 주고받습니다. 1월에도 하고 3월에도 합니다. 그런데 10월 말쯤 되면 농담이 아니게 됩니다. 1월엔 낄낄거리지만 10월엔 어, 진짜네, 합니다. 이제 눈 깜빡 하면 곳곳에서 캐롤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거릴 것입니다. 출퇴근길 하늘은 새까맣고 눈앞에 하얀 입김이 흩날릴 것입니다.


트리 비슷한 장식과 거대한 양말을 일 년 내내 걸어두고 삽니다.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서도 아니고, 치우고 다시 거는 게 귀찮아서도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산타 할아버지 휴가 기간에 우리 집 지나면서 좀 보시라고 둔 걸로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산타 할아버지에게 똑같은 소원만 빌었는데, 끝내 안 들어주셔서 좀 섭섭합니다. 해마다 양말 속을 들여다봐도 우리 아기는 없었습니다. 우량아도 쏙 들어갈 커다란 양말인데, 들여다보면 작년에 내쉰 한숨 냄새만 납니다.


내 자식 키워서 무슨 선물 넣어줄까 고민하고 싶지만 자식이 없으니 내가 아이입니다.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는데 자꾸 울어서 그랬나 하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실컷 울어서 잘 안 우는데 그래도 안 들어 주시는 건 너무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도 아내와 둘이서 맛있는 거 해 먹고 따뜻하게 보낼 예정입니다. 고기도 썰고 케잌도 자르고 와인도 마시고, TV 보면서 나쁜 사람들 욕도 좀 할 생각입니다. 여차하면 올해부터 산타 할아버지도 리스트에 올릴까 싶습니다. 심한 욕은 못 하겠지만 맨발로 레고 밟으시라거나, 알람 울리기 5분 전에 잠에서 깨시라는 정도면 어떨까 합니다. 아니, 두 달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미리 해야겠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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