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면 항상 딴짓하느라 바빴습니다. 미끼는 징그럽고, 장비는 어렵고, 기다리긴 지루해서 그랬나 봅니다. 물고기보다 장구애비, 물방개, 새우, 올챙이 잡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잠자리를 쫓아다니거나,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고기 잡고 기뻤던 기억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낚시 가기가 싫었던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미화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머리가 좀 큰 이후에는 아버지와 같이 어딜 간 적이 없습니다. 관계는 많이 소원했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랬습니다.
TV에서, 책에서 흔히 듣던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말이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그냥 말이었습니다. 말은 공기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비집고 다녔습니다. 단어들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다 병실로 갑니다. 아버지 곁에 앉아도 ‘마음의 준비’가 무엇을 준비하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와는 이미 대화가 불가능했기에 대화는 혼자 합니다. 머릿속에서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기억을 남처럼 멀찍이서 바라봅니다. 물에 물 탄 것 같은 기억의 줄기가 빠르게 흘러갑니다. 진하고 알록달록한 기억이 금붕어처럼 가득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낚시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나마 눈에 띕니다.
갓 취직했을 즈음부터 수년간, 아버지를 불쑥 찾아가서 낚시 가자고 해야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정말 여러 번 했습니다. 그 말이 뭔가 해결해 줄 것 같았습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우리 사이를 그 말이 해결해 줄 것 같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고기를 낚든,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계속 흘렀고,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낚시 가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볼 때, 들숨인지 날숨인지 모를 그것이 쌔액 하고 소리를 지를 때, 그제야 아버지에게 낚시 가자고 외쳤습니다.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낚시 가서 뭐가 좋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기억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기분을 나도 내 자식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제 아버지와 낚시를 갈 수 없지만, 자식이 생기면 꼭 같이 낚시하러 가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었습니다. 같이 물고기도 잡고, 물장난도 하고, 라면도 끓여먹고, 텐트 치고 만화책도 보고, 또 뭘 할까...... 세상 행복한 고민입니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을 수도 있고, 용왕님의 귀한 자식을 놓아주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추억이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낚싯대 못 살 처지도 아니고, 낚시 따위 질색하는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아픈 곳 없이 멀쩡히 숨쉬고 살아 있는데 자식이 안 생기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아픔을 회피하려는 마음에, 하긴 가봤자 뭐 얼마나 재밌어했겠어, 나는 무슨 근거로 아이들도 좋아하리라 믿었을까, 나라고 뭐 얼마나 좋은 아빠였겠어, 하는 생각들도 가끔 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같이 낚시하러 갔다면, 가기만 했다면 분명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분명히. 진짜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