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중

방황끝

by 배유정

어린 시절, 진정한 멘토를 찾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안개 속을 헤매는 소년에게 길을 알려줄 선구자를 찾고 싶었습니다. 정해진 길이 없다면 방향이라도 넌지시 알려줄 스승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린 어른쯤 되었을 때, 길도 방향도 없음을, 그리고 멘토는 원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지만 그것은 마치 동영상 강의를 보듯이 일방적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쌍방 합의로 이루어지기는 지극히 어려움을 알았습니다. 내가 존경한다고 해서 오냐, 내 제자 해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칭찬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의 반감을 살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내가 단단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방황하고 살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도 앞길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걱정이 많아서인지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싫어서인지,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주로 쓰는 ID로 sinclair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이름을 땄습니다. 내 인생에는 프란츠 크로머도 에바 부인도 없었고, 나를 오롯이 싱클레어에게 투영하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났다는 것, 그것 하나가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 이름은 ‘방황중’이 되었고, 각종 ID들은 모두 싱클레어가 되었습니다.


취업 후인지 결혼 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심경의 변화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블로그 이름을 ‘방황끝’으로 바꾸고, 예전에 좋아했던 게임 대항해시대 2에 대한 글들만 남기고 모두 비공개로 전환한 후 그 후로 십여 년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들여다볼 일이 있어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내 집인데 남의 집 같은 내 블로그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 ‘방황끝’이라는 이름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려서 뭘 몰랐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과거의 나를 우습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무자식 세계를 방황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방황일 뿐, 어린 날의 방황보다 더 크거나 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방황이란 끝나기 어려움을 알지만, 이름을 다시 방황중으로 바꾸지는 않기로 합니다. 굳이 방황 중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끝날수 없는 끝이란 글자를 보며 생각할 여지를 갖는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사춘기란 부모의 품을 떠나 자아를 찾는 과정입니다. 부모 말이 맞아도 괜히 듣기 싫은 시기입니다. 생물로서의 인간이 진화의 기회를 확장시키도록 진화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멘토가 부모님이었다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부럽지 않기도 합니다.


자식이 있었다면, 머리가 좀 큰 후에도 좋은 멘토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쓸데없는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꼬꼬마 때는 최선을 다해 멘토가 되어 주고, 중2병 들 때쯤부터는 괜찮은 멘토를 얻을 수 있게 넛지 정도 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책과 동영상 같은 일방적인 관계가 많겠지만, 인류가 쌓아온 간접 경험의 위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답'이 아닌 '사람'에게 의존하는 실수를 줄여 줄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이 주절주절 길었습니다. 결국 '나도 좋은 아빠 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 하나를 늘여 쓴 것입니다. 길게 쓰기 대회였다면, 음, 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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