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란 단어의 무게

by 배유정

주말을 맞아 모니터 속 악의 사도들을 무찌릅니다. 용사이지만 성직자니까 찌르고 베는 건 안 어울립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마법 망치를 만들어 휘두릅니다. 뿔 달린 악마와 두 발로 걷는 소 떼가 데친 시금치마냥 쓰러집니다.


근육질 소를 물리치는 용사님


손과 눈은 악의 무리를 때려눕히기 바쁘지만, 귀는 옆에서 아내가 보는 TV 프로그램들을 쫓아다닙니다. 먹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 상담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양이와 강아지들. 참 다양하게도 봅니다.


오늘은 암투병 중인 엄마 이야기를 보는 모양입니다. 무심히 듣던 중, 이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립니다.


"작은 손이 내게 온 순간, 나는 엄마가 되었다."


딸들을 입양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암 투병이라니. 망치질에 집중이 안 됩니다. 세상은 잠시 후에 구하기로 하고 TV를 봅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여러 생각들과 경험을 공유했지만, 민감한 얘기들은 대체로 배제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입양입니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부모가 선택받는 것인데, 입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속을 지나갔던 말들을 옮길 뿐이라 해도, 손끝을 주저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생명과 인생에 관한 문제인데 원칙은 없고, 논란의 여지는 많은 주제입니다. 괜한 얘기를 꺼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상기시키기도 싫고, 그 누구와도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움직여 봅니다. 입양, 참 무겁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어떻게 만져야 할지 고민이 앞섭니다. 인생 선배이신 작가님들 글에서 느껴지는 촉감, 때로는 비단 같고 때로는 삼베 같은 그 촉감 위에 무게만 천오백 근쯤 얹으면 좀 비슷하려나요.




입양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를 갖고, 아이는 부모를 갖게 되니 이야말로 윈윈이 아닌가 했습니다. 어렵게 마음을 정한 부모님들과, 생의 비밀을 알고도 초연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중 하나이기를 선택하면 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내 자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희망이 꺾인 후에 '고르는' 내 자식은, 내 유전자를 품지 '못한' 내 자식은, '낙인'을 스스로 지워야 하는 내 자식은, 과연 부족한 아빠의 한계를 넘어 잘 자랄 수 있을까. 실망 없는 기대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이리저리 잽니다. 줄자가 많이 남습니다.




멍하니 듣는 사이에 헌혈 이야기도 나옵니다. 마음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헌혈을 못 하고 있어 신경이 쓰입니다. 혈액원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 중이라고 했더니, 헌혈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회사로 찾아오던 헌혈 버스나, 전에 갔던 헌혈의 집에 갔으면 그냥 했을 것을, 그날따라 왜 혈액원을 찾아가 쫑알거리다 쫓겨났는지. 혈액 수급이 위태롭다는데, 약 때문에 바늘 못 꽂은 지도 어느새 일 년이 넘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애도 못 데려오고 피도 못 주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입니다. 다시 모니터 속으로 돌아왔더니, 세상을 구해야 할 용사는 바닥에 납작 뻗어 있습니다. 구석으로 피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싸우던 용병 녀석이 무서운 소떼를 끌고 왔던 모양입니다. 용병도 용사도 쥐포마냥 바닥에 누웠습니다.




세상을 구하지 못하고 쓰러진 용사의 꼴이 꼭 자신 같습니다. 내 한 몸도 못 구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어찌 책임질까요. 무엇이 옳은 걸까요. 이미 늦었을까요, 그런 건 없을까요. 봉사활동이나 기부로 마음을 채울까요. 부채의식과 상실감은 왜 같은 저울 위에 있을까요. 부모 노릇을 하고 싶은 걸까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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