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떡국을 끓입니다. 양지를 참기름에 볶고 멸치육수에 바지락도 넣습니다. 지단은 생략하는 대신 계란 세 개 풀어 넣고, 고기만두도 넣습니다. 얼음 판에 넣어 얼린, 주사위 같은 다진 마늘도 두 덩이 넣습니다.
국물 맛이 괜찮았는데 갑자기 마늘 맛이 너무 튑니다. 슬쩍 감추려고 굴소스에 치킨스톡까지 허겁지겁 넣습니다. 좀 짠 것 같은데 아내는 신랑표 떡국은 다 좋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입니다.
전날 욕심내서 사다 놓고 못 먹은 과메기도 꺼냅니다.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낮술 생각이 났지만 새해니까 꾹 참습니다. 퓨전메뉴로 푸짐하게 한 살 더 먹습니다.
한 살 더 먹었다지만, 사실 떡국이 나이의 이정표로 느껴지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갈 때에나 소용이 있는 모양입니다. 예전 떡국은 표지판 같아서, 지나치면 이제 한 살 더 먹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요즘은 떡국이 옆에서 같이 달리기라도 하는지, 떡국만 봐서는 내 시간이 정말 빨라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빠른 떡국을 먹나 봅니다. 앞으로 더 빨라질 텐데 큰일입니다.
풍경은 휙휙 지나가고, 점점 가벼워지는 떡국 그릇이 스포츠카를 타고 옆 차선을 달리는 상상을 합니다. 남편이 떡국 먹으면서 속으로 이러고 노는지 아내는 모를 것입니다.
시간은 나를 끌고 가는 힘이고, 시간의 속도는 내가 세게 버틸수록 느려진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동안은 나름 힘이 세서 천천히 끌려갔지만, 내가 약해질수록 점점 빨리 끌려갈 것입니다.
문득 내가 좀 더 무거웠다면, 아니 가족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으면 시간도 좀 더 느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 많을수록 더 천천히 끌려가지 않았을까, 하고 한숨을 픽 내쉬어 봅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똑같이 빨리 가는 모양입니다. 요즘 잘 먹어서 좀 커졌는데, 시간은 딱히 느려지지 않았으니 착각이 분명합니다. 떡국 먹고 더 커졌는데 또 하루가 휙 하고 지나갔으니 틀림없습니다. 어차피 점점 빨라질 거, 둘이서 손잡고 수상스키라도 타듯이 즐기면서 끌려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