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멍뭉이들 건강하길
때는 일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저녁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은 저녁 먹고가 아니라 먹기 전에 살짝 주변 공원을 돌기로 해서 꼬리를 올리고 칙칙폭폭 주변 공원을 걷고 있었다.
익숙한 장소에서 동네친구를 만나 한껏 업된 레체는 같이 우다다하며 주위를 마구 뛰었는데 갑자기 뛰던 레체가 멈춰 서서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발을 들고 절뚝이며 걷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색이 된 우리는 즐거웠던 산책을 바로 종료하고 병원 갈 방법을 모색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넘었고 일요일이라 늘 다니던 병원에 갈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일단 동거인과 나누어서 한 사람은 차를 빌리러 가고 한 사람은 레체를 집에 데려가기로 했다. 새삼 레체가 이렇게 무거웠다는 것을 실감하며(집 앞에서 가끔 안고 1-2분 가긴 했지만 12kg 레체를 5분 이상 안고 가려니 팔이 저절로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포옥 안겨서 들어온 레체는 여전히 한쪽 발을 들고 있었고 절뚝거리며 걸었다. 발에 가시가 박힌 건가. 급하게 검색해 보니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이물질이 박힌 것 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서 촬영을 해야 한단다. 재빨리 단골 병원에 전화해 보니 곧 영업이 종료될 예정이라 차라리 큰 병원이나 24시 병원에 가보란다. 주변 2-3개 병원에 전화해 본 후 겨우 오면 된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동안 동거인은 그린카로 급하게 차를 빌려 왔다. 그린카존에서 집까지 또 몇십 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시간이 좀 소요되었다. 동거인 역시 몇 군데 병원에 전화를 돌리고 찾아봐서 그중 한 군데에 가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일요일 저녁인데 이렇게도 아픈 동물들이 많단 말인가. 병원 자체도 크기도 했지만 이미 기다리고 있던 동물환자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긴급환자들로 레체의 순번은 계속 밀렸다. 저녁도 못 먹고 온 병원이었는데 8시가 넘어가자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호사님께 여쭤봐도 계속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말뿐.
9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선 CT촬영을 해봐야겠다고 하셨다. 보통은 병원 진료 중에도 심신안정을 위해 우리가 늘 같이 들어갔기 때문에 더 이상은 들어오시면 안 된다는 말에 덜컥하며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난히 겁이 많고 우리와 유대감이 깊은 레체가 혹시 우리가 버리고 간 건 아닌지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꼭 필요한 검사이니 레체가 잘 견뎌주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0년 같은 10분이 지나고 드디어 간호사 선생님께서 레체를 데리고 나오셨을 때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늘 깔끔하고 깨끗하다는 소리만 들어왔던 레체가 똥오줌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촬영을 위해서는 네발을 묶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무서웠는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실수를 한 것이었다. 다시 나타난 우리가 너무 반가워 그렁그렁한 눈으로 꼬리 치며 안기는 레체를 꼬옥 안았다.
이어서 다시 진료실에 가서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들었다. 일단 CT상으로는 특별한 이물질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혹시 파악되지 않는 작은 무엇인가가 박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단다. 잠깐 삐었거나 외상이 있어서 다리를 절 수도 있는데 탈골이나 골절의 징후는 없으니 이 역시 지속적 관찰을 요한다고 하셨다(그러고 보니 아까 우리에게 두 발로 달려왔던 것 같은데…?) 결국 확실한 원인이나 병명을 찾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별일 아닐 수도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어 우리는 감사하며 병원을 나섰다.
집에 와서 다시 차를 반납하러 갔다 왔다가 더러워진 레체의 몸을 씻겨주고 나서 동거인은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기진맥진해서 잠들면서도 곤히 자는 레체의 존재 자체가 감사히 여겨지는 밤이었다.